커피가 주는 깜찍한 힌트

by 수수한

“나 삼 일간 정도 커피 마셔보지 않으려고.”

이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러라고 대답한 뒤 짝꿍은 자신의 커피를 내리면서 재차 물었다.

“진짜 안 마셔?”


진짜 안마실 예정인가?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어 대답을 했다.

“응, 우선은.”

이것이 오늘 아침의 대화였고 지금은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다. 우선은, 지금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아침 식사 후에, 혹은 아침식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함께 출근하는 때에는 이렇게 동시에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오붓하게 나눈다. 신기한 것이 커피를 매개체로 마주하며, 따뜻한 컵에 손을 감고 있으면, 아니 설사 그것이 따뜻한 커피가 아니라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할지라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힘이 있다. 혹은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마음을 조금은 말랑하게 풀어준다든지, 잠시 쉬는 느낌을 준다든지.

휴일이나 주말이라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낼 때에는 아침 커피뿐 아니라 오후 커피도 함께 한다. 이미 쉬고 있는데도 커피가 들어서면 휴식이라는 확실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오늘은 쉬는 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1시가 넘어서야 졸음이 몰려오고 눈을 감았다. 자는 도중에도 내가 뒤척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고, 건조해서인지 밤이면 더욱 가려워지는 종아리를 벅벅 긁은 시원한 소리와 시원한 손끝과 종아리의 감각이 느껴졌다. 어느새 긁는 행동마저 멈추고 잠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 같은데 요의로 살며시 정신이 돌아왔다. 조금은 서늘할 거실의 공기를 생각하니 몸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는데 이렇게는 다시 깊게 잘 수 없을 것 같아 용기 내어 이불속에서 나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3시 20분. 역시나 참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일어나기 싫지만 일어나야만 하는 아침 시간이 다가와 눈을 억지로 떴을 때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잠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그 새벽 3시 20분 이후였구나. 나는 새벽 3시 20분 이후의 잠 같은 잠을 계속 자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한다. 이때 뜨지 않으면 나는 정말 자고 싶은 잠을 잘 수 있는데!

일어나는 시간을 늦출 수 없다면 자고 싶은 잠의 시간을 옮겨야 할 터이다. 아침에 늘 일어나기 싫은 사람이었으니 커피를 마신다고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시까지 졸리지 않고 눈을 감은 뒤에도 뒤척이는 것을 보니 어쩌면 커피의 영향력 아래 놓인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커피가 없는 삶이라니. 나는 어디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모임에 나가서도 커피 대신 다른 차를 선택할 수 있을까. 홍차에도 엄연히 카페인이 들어갔는데 녹차와 홍차 대신 다른 차를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놀라운 것은 나는 아직 아침 커피 시간을 지나지도 않은 오늘 아침 이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냥 오늘만 마시지 말자는 거야. 진정해. 달음질치는 생각을 붙잡고 아침 식사 후 커피잔을 들지 않았다.


커피가 들어가야 하는 시간인데 커피가 들어가지 않자 묘하게 허전한 기운이 들었다. 그로부터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미 몽롱한 기운이 들었다. 이 몽롱함이 커피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나, 나는 여태 커피로 뇌를 깨웠나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커피로라도 뇌를 깨우는 것과 그냥 이런 몽롱한 기분에 취해있는 것 중 무엇이 더 옳을 일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이 실행이 며칠이나 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작은 호기심이 생겼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하루 안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사실 하루 만에 반응이 오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대략 3일간의 새로운 선택이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다시 커피를 마시고 싶어 마시게 되더라도, 작은 변화를 감지하였다면 이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없어서 더 개운한 잠이 왔음에도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마실 것이다. 다만 나는 알고는 있겠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양질의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설령 변화를 감지하지 않았더라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커피가 나의 잠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니까. 어쩌면 이쪽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인가.


살면서 당장에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지난주와 이번 주가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5년 전과 지금이 똑 닮았냐고 치자면 그것은 아니다. 비슷한 면이 많겠지만 소소하게라도 내 일상 안에 달라진 부분들이 많다. 살아남은 것과 떠나간 것들, 거기에다가 비운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오늘의 모습을 가져왔으리라. 그러나 바로 어제를 바라보고, 일주일을 바라보고, 한 달을 바라보자면 일상을 대하는 나의 자세라든지 컨디션 등은 크게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원한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중 오늘의 귀여운 시도는 내 머릿속에서 작은 반짝임을 주었다. 마시고 있던 커피를 안 마셔본다는 것, 혹은 그 커피 대신에 다른 것을 마셔본다는 것만으로 변화의 여부를 상상하며 관찰하자니 과연 그 결과가 어떨지 나도 사뭇 궁금해진다. 그리 큰 모험과 투자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신선한 시도라고나 할까.


당연한 듯 하고 있어 익숙해진 나의 패턴 속에서 살짝 뒤틀려 변화를 줄 수 있는 아무런 위험없고 무리없는 힌트들을 찾아보고 싶다. 그래서 재미로라도 한두 번 해보고 싶다. 해보고 나서 나에게 맞지 않고 별로라면, “그래, 역시 원래가 좋았어.”라고 가볍게 말하고 내일부터 원래대로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정도의 변화의 힌트를 찾아보고 싶다. 이렇게 살아남은 것과 떠나갈 것들을 추리고, 새로운 것을 채워나가면서 조금씩 일상에 변화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은 시도여서 몰랐는데 뒤돌아보고 나니 그날과는 전혀 하루를 채우고 있더라’하고 미래의 어느 날 이렇게 말하고 있으려나,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인지 왠지 몽롱하게 느껴지는 정신으로 상상해 본다.


우선 오늘은 끝까지 커피를 피해보겠다. 몇 시부터 잠이 오려나 벌써 궁금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1시쯤 눈이 감기고 새벽 3시쯤까지 뒤척이며 종아리 부근을 신나게 벅벅 긁다가 화장실을 다녀와 단잠을 잔다면, 난 내일 아침부터 다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