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메이크업 시간에는 온갖 해야 할 것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맛 팔자 주름이 깊어지고 있어. 미간에 근육도 뭉치고 있네. 방치했다가 깊은 주름이 돼버리겠어. 눈썹도 다듬어야지. 길이가 들쭉날쭉하고 지저분하네. 피부가 영 푸석푸석하구먼. 오늘은 꼭 팩을 해야지.'
이 순간에는 이 모든 것이 시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나열한 것들을 하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족집게를 들어 미약하게나마 짧게 자라나고 있는 지저분한 눈썹 몇 가닥을 뽑아본다. 1mm의 만족감을 주었을까. 나머지는 오늘 저녁의 나에게 부탁한다.
아이들이 어떤 바지를 입고 갈까 고르고 있다. 내 눈에는 이 바지도 저 바지도 성에 안찬다. 작년보다 키가 자라서 바지를 주문해야지 생각했는데 왜 이 생생한 감정은 옷 고르는 이 시간에 몰려오는 것일까. 오늘은 꼭 주문을 해야지.
사실 이뿐이 아니다. 김치냉장고 속의 포도! 오늘은 반드시 다 꺼내서 확인하고 착즙기에 넣고 싹 갈아 주스로 만들어야지. 여기서 '확인'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상태가 어떨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어느 정도는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어차피 상태가 안 좋을 것이라면 하루 정도 지나 봤자 뭐 크게 달라질 것이 있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과 함께 나 자신이 싫어지는 자괴감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까닭은 엄마, 아빠가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오시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내가 해결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비단 포도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포도는 양반인지 모른다. 내가 인지하고는 있으니. 우리 집 어느 곳에는 내가 해결해야 하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샅샅이 파헤쳐 해결해야 하는 것이 나의 과제이다.
오늘 아침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이 다짐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지. 어제 아침도, 그제 아침에도, 그전의 아침들도.. 아침마다 나는 같은 다짐을 해왔던 것이다. 아주 작은 몇몇 개를 더하고 덜하면서. 아침에는 그렇게도 시급했던 일이 저녁만 되면 깡그리 잊힌다.... 는 아니고 외면한다. 분명 아침에는 시급한 마음이었는데 마음은 생각으로 변하고 시급함은 증발되어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거울 앞의 나에게 이 생각을 미룬다.
화요일의 지금의 내가 월요일 저녁의 나를 바라본다. 월요일 저녁의 나는 너무나 고단했다. 그저 월요일을 잘 지내고 돌아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생각해내고 저녁밥을 차리고 가족들과 맛있게 먹은 뒤 내 방에 깔아 둔 두터운 절 방석 아래로 기어 들어가 방바닥의 가장 따뜻한 곳을 더듬어가며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저녁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저녁이 다가오니 아침의 다짐을 그전날 저녁에 대한 비난으로 돌리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슬슬 든다. 하루는 저물어가고 오늘의 몫을 지내고 이 시간까지 온 나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온다. 오늘은 게다가 눈도 오고 깜깜해질 밤을 뚫고 씩씩하게 요가도 다녀올 거잖아.
이렇게 나에 대한 관대함이 넘치니 내일 아침 다짐도 줄어들리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