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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Apr 16. 2023

[수수한그림일기]잃어도 되는 자식을 가진 부모는 없다

2023.4.16

2015.4.16 일기

낮에 작은 꼬마의 점심을 먹이며 울어버렸다.


장조림에 밥을 비벼 먹이는데,

참새처럼 쩍쩍 입을 잘도 벌리며 받아먹는 거다.

코를 찡긋거리며 맛있다는 시늉을 하며 쩝쩝대며..

나는 내 손을 쪽쪽 빨아가며, 아이의 밥에 고기도 얹고 양파도 얹어가며 입에 넣어주고 그러면서 울고 말았다.


내가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면.

오늘 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엄마들은 나처럼 내 손을 쪽쪽 빨아가며,

내 새끼 입안에 이 음식을 얼마나 넣어주고 싶을까.



2016.4.16 일기


장조림을 아기새같이 받아먹었던 나의 작은 꼬마는 부쩍 자라 이제 어린이집에서 김치까지 먹고 오는 아가가 되었다.


나처럼 장조림도 먹이고, 김치도 먹이고,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얹어 그렇게 키워낸 아이들이 홀연히 떠났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키운 아이들을 보냈고,

내가 살아본 시간들을 키워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보냈다.


잃어도 되는 자식을 가진 그런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오늘도 내 새끼 입에 넣을 밥을 짓는다.



2023. 4. 16


아침에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라고 말하며 나의 꼬마들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다.

나의 작은 꼬마는 어느새 양념치킨까지 먹을 수 있는 어린이로 자랐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스스로 다리 한쪽을 들고 치킨무도 맛있다고 한 입씩 베어 무는 어린이로 자랐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치킨을 먹었다.

매해 오늘이 더는 여느 날일 수 없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잊지는 않겠다고, 나의 일기장을 펼쳐 그 시간을 더듬어 읽어본다.

내년에 이 일기에 또 한 줄을 더할 것이다.


#기억은힘이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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