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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ul 07. 2023

[수수한그림일기]나의 물건 말해주는 나의 취향이야기

2023.7.5



'잘산템'

이 말이 묘한 두근거림을 준다.

사기 전에는 설레기 쉽다. 그러나 사고 나서도 "참 잘 샀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일부이며 뿌듯함을 가져온다.


 반면에 그것의 가격이 얼마가 되었든 "괜히 샀어."가 되어버리면 볼 때마다 기분이 별로다. 잘산템이 뿌듯함을 가져온다면 괜히 샀어템은 죄책감과 좌절감을 가져온다. 멀쩡한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돈 쓰면서 지구에 또 몹쓸 짓을 했구나 싶다.


 다시 잘산템으로 돌아가서 몇 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참 잘 샀어'라고 되뇌며 쓸 때마다 기분 좋은 물건들이 있다.

 이것이 망가지거나 다 써도 똑같은 것을 또 사야겠어라든지, 이것을 주고 다른 물건으로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라든지, 앞으로는 구할 수 없으니 잘쓰면서 오래오래 내 곁에 두어야 해. 라든지 이런 마음을 주는 물건들이다.

 물질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래 지니고 있으며 자주 쓰는 물건을 바라볼 때 드는 마음은 솔직히 나를 칭찬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여 이런 마음을 드는 물건들로 들이고 싶어 사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하려 한다.(고 하지만 첫눈에 반해 직진하여 단숨에 구매하는 것도 많다.)


 나에게 나스 생 폴 드방스 아이섀도가 그런 것 중 하나인데 1년을 기준으로 거의 90프로 이상의 지분으로 내 눈두덩이 색상을 담당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점점 바닥을 보이는 왼쪽 넥타린 색상을 보면서, 너를 데리고 오는 나를 자주 칭찬하고 네가 단종되면 너무 슬플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거의 70프로의 지분으로 몇 년째 내 어깨에 착붙인 가방이 있는데 장롱 속에 처박아둔 명품가방을 볼 때는 솔직히 꼴배기 싫은데, 이 가방은 볼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좋다. 나의 큰 꼬마가 어렸을 때 샀으니 이 가방과 함께한 세월이 꽤 되는데 이쯤 되면 '나의' 물건이라 칭해도 될 만큼 애정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손때 묻은 나의 물건이 늘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손때 묻은 물건을 갖기는 어려우니까. '이것에 정착하겠어'라기엔 경험한 물건도 적고 이것이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장담을 하긴 어려우니까.

 물건이 비단 물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스타일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점점 나란 사람의 취향을 알아가는데 방황을 덜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덜'이라는 부사를 덜어내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방황하고 실패하는 구매를 하기도 하니까.


_만년필에서는 초년생이었어서 그렇게 방황하고 실패를 했고 이제야 좀 취향을 깨닫게 되었고 실패한 녀석들은 멀쩡해서 버릴 수도 없는데 좀 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렇다. 여기에서는 아직 젊은이니까 막 첫눈에 반하고 고민도 덜하고 들이고 그렇다. 역시, 숱한 경험이 취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모든 분야에서 어르신일 수 없으니 앞으로 방황하고 좌절하는 구매도 피할 수 없는 일이구나. 하며 내 구매를 이렇게 합리화하는 마무리로 마치게 될 줄은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찜해둔 만년필 예약해 놓고 입고되기를 기다리는 자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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