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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ul 09. 2023

[수수한그림일기]검은 점을 보며 부푼 꿈을

2023.7.8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들을 완벽히 잘 기른다 장담할 수 없지만, 내 손으로 기르기 정말 어려운 것이 있으니 다육이와 허브이다.

죽이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은 다를 거야, 희망을 가지고 가끔씩 저지르고는 하는데 어김없이 후회하며 다시는 들이지 말기로 다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브 중에서 꼭 키우고 싶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질.

 화분으로 된 바질을 데리고 와 밀가루서부터 손으로 반죽하여 수제 피자를 만들었던 날이 있었더랬다. 바질 잎 몇 장 뜯어 데코 한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보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러 요리에 얹은 일이었다. 사실 화분을 사느니 식재료 코너에서 바질을 사는 것이 더 풍족히 먹었을 결과를 보였으나 기르는 동안(이라 말하긴 참 어렵고 서서히 죽여가는 동안이 더 옳겠다.) 지켜보며 맡는 바질 향은 참 달큼했다. 언제 잡아먹을 수 있을까 요리조리 살피는 마음은 참 설렜다. 그런 검은 마음으로 키워서일까 오래 안 가 이별을 했지만, 아끼는 잎 몇 장을 고르고 골라 아까워하며 뜯으며 내가 만든 음식에 얹는 일은 식당에서 흔히 보는 허브 데코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이미 자란 바질을 데리고 와서도 죽인 주제에 호기롭게 이번에는 씨앗부터 시작한다. 이미 자란 식물을 죽이는 것이 더 죄책감이 심할 듯하여 생명력이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점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안일한 마음에서였다.


 검은 점에 물을 분무하며

피자에도 얹고, 토마토 마리네이드에도 찹찹 다져 넣고, 더 많이 풍성히 얻게 되면 믹서에 잣과 함께 갈아 바질페스토를 만든 부푼 꿈을 꾸고 있자니

이건 헨젤과 그레텔을 잡아다가 맛있는 것은 잔뜩 주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마녀가 된 기분이다. 이래서야 이번 농사도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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