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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Dec 03. 2020

세상이 떠들썩하던 그 날, 나는
- 나의 수능 날

하마글방 수강생 나무의 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영역이 아직 언어영역이고, 모든 수험생들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영역을 함께 보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벌써부터 라떼의 향기가 아주 진하게 우러나오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세 번이나 나왔을 정도니까 이 사회는 과거의 향수에 그렇게까지 야박하지는 않으리라 믿으며 그때의 기억을 더 살펴 나간다. 첫 시험 시간이 100분이었는지 90분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는 지경이지만, 숨소리도 잡힐 것 같던 그 고요함 안에서 아우성치던 마음만은 생생히 다가온다.      


이거 스치듯 공부했지만 그래도 공부한 작품인데, 왜 이렇게 모르겠지? 3번인가? 4번인가? 이제라도 답안지를 바꿔야 할까?      


답안지에 수정테이프가 허락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답을 고치려면 답안지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깊게 고민하던 내가 손을 들고 답안지를 새로 받아 바꾼 답으로 다시 작성했다. 뒤이은 수리영역 시간에는, 손을 댈 수 없거나 답이 나오지 않았던 문제는 결국 한 번호로 찍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긴장이 풀리자 탐구 영역 시간에는 조는 줄도 모르고 살짝 정신을 잃었다. 모의고사에서도 항상 한 문제는 틀려서 자신이 없던 외국어 시간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제2외국어까지 보고 나니 시간은 6시였나, 7시쯤이었나. 지금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 전자기기인 아이리버 MP3-CD 플레이어를 돌려받자마자 라디오를 켰을 때 귀에 들리던 문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올해 수능은 쉬웠다면서요.      


거짓말!!!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외쳤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나중에 이 소식은 잘못 알려진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때는 확인할 길이 없어서 눈동자만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굴렸다. 불안해지는 마음을 그래도 나쁘지 않게 봤어, 라는 수줍은 자기확신으로 어떻게든 얼렀다. 내가 속한 고사실에, “퇴실해도 좋습니다.”는 소리가 스피커로 나왔고 그 순간 나랑 같은 처지였을 수험생들은 우르르르 교실을 빠져가가기 시작했다.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서서히 고양되어 가는 기분은 복도를 메웠던 웅성거림과 합쳐져 빵빵한 풍선처럼 마냥 부풀어 오른다. 높이 높이 올라가는 헬륨가스 풍선을 보며 두근거렸을 때처럼 마음이 콩콩거린다. 드디어. 말을 되뇌인다. 드디어.      

수능이 끝났어!!!!!       


이제 여섯 시마다 음악과 함께 일어나야 하는 기숙사 생활도,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공부해야 했던 시간도 안녕이야. 이 계단을 내려가면, 이 복도를 지나가면, 이 학교의 현관문을 나가면, 이제 나는 다른 세계로 - 백두산이라도 휘리릭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기세는 교문을 너머의 일상과 마주치며 멈춘다. 그곳에는 특별한 기적도 화려한 행사도 대단한 세상도 없었다. 어둑어둑한 하늘은 땅거미를 보내고 교문을 나가려고 하는 자동차는 줄줄이 사탕으로 운동장을 휘감는다. 거리의 가로등이 켜지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추웠다. 바람이 찼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기숙사 학교에서 살던 나는 규칙상 평일이었기 때문에 집이 아닌 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답안지까지 바꾸어가며 고쳤던 언어영역 문제가 틀렸음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인상은 감으로 찍었던 수리영역 문제 중 두 개는 맞혔다는 사실을 알고도 잘 펴지지 않았다. 하염없이 켜져 있는 교실의 TV에서는 어떤 채널을 틀어도 올해의 수능 이야기가 적어도 한 번은 소재로 등장했다.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 올해 수능의 난이도는 예상보다 어려웠으며 …… 수험증을 지참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 우리 반 아이들과 정착한 채널은 답을 맞춰주는 방송이었다. 아마 EBS였으리라. 우울한 한숨이 감돌았다. 수험생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동질집단에서 동료의 슬픈 감정에 예민하게 조응하여 함께 우는 아이도 제법 있었다.   

   

이상했다. 온 세상이 올해의 수능을 말하는 것 같은 오늘 이 시간, 시험이 끝난 직후의 그 두근거림은 간 데 없고 홀로 우두커니 남겨진 기분을 느꼈다. 수능이 끝나면 갑자기 내가 마법사라도 되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리라 ― 따위의 상상은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능이 끝난 후의 세계는 그 전과는 좋은 쪽으로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막연한 기대와는 아주 달랐다. 설렘도 해방감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건 쓸쓸함과 허전함을 매우 닮아 있었다.      


나는 그 교실을 떠나 무엇을 했는지 기억한다. 학교 전산실로 가서 컴퓨터로 웹서핑을 했다. 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그 사이버 그물망을 떠돌았다. 온라인 뉴스에서는 일제히 오늘의 수능을 보도하고 있었고 내가 바로 그 오늘의 당사자였으나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얄팍하고도 간절한 소망 하나가 떠올라 맴돌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구라도 알아주세요. 내 이름은 나무예요. 나는 오늘, 수능이 끝났어요. 나는 오늘, 무척 외로워요. 그 누구라도, 알아주세요.


작가 나무

글쓰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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