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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Dec 30. 2020

n번째 조종석

하마글방 수강생 김저니의 글

오른편 창가에 우체국 5호 박스를 기대어 둔 지 1년이 넘었다. 납작하게 포개 둔 박스의 모서리에는 저마다 투명하거나 노랗거나 혹은 어딘가의 상표가 인쇄된 박스 테이프가 여러 겹 붙어 있었고, [받는 분] 왼쪽에는 「우편번호가 2015년 8월 1일부터 바뀝니다」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박스는 대략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에 유통되어 그간의 수차례의 이사를 감당했는데, 지금은 골판지의 물성을 살려 방열판 겸 차광막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사는 잦았지만, 언제나 나 홀로 있을 수 있는 방을 구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 처음이었다. 가방끈을 이어붙이는 동안 학기마다 이사를 하던 방들은 누군가와 같이 쓰는 기숙사 방들이었으니까. 새 방은 제법 깔끔한 편이었지만 세간을 들여놓고 보니 넉넉하지는 않았다. 구획이라고는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것을 어떻게 내 ‘집’으로 부를지 조금은 거북했지만, 이 주소로 전입신고를 해 보니 비로소 깨닫는 바가 있다. 아아 몰랐는가. 이것은 “1인 가구”라는 것이다.


박스를 기대어 둔 건 입주한 다음 날이었다. 집을 알아보던 날이나 이삿날에는 해가 강하지 않아서 베란다 없이 남향인 방이 창문까지 넓으면 어떤 빛을 받게 되는지를 미처 몰랐다. 커튼조차 차광이 되지 않는 물건이었으므로 책상 위에 노트북과 모니터를 올려 개인 작업 공간으로 삼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둘 다 일광욕을 좋아하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래서 가림막이 필요했고, 마침 손에 잡히는 박스를 올리게 되었다. 그 뒤로 이 역할에 더 적합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맨 오른쪽에는 창가에 박스를 대고, 짧뚱한 원목 거치대에 모니터를 얹고, 가운데에는 노트북을 비스듬히 올리고 왼쪽 책장에 책을 채우니 뭔가 작업을 할 만한 - 그렇다기보다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배치의 - 책상이 되었다. 석사 시절 연구실 책상도 딱 이랬다. 그때는 삼면이 파티션으로 막혀 있는 - 프라이버시가 적당히 보장되는 - 책상이 꿈만 같아서 어떤 글귀며 사진이며 오래된 팔찌 따위를 침핀을 꽂아 걸어두었지만, 지금은 셋방 벽지일 뿐이라 아무것도 없이 깔끔하다는 차이뿐.


주변을 이렇게 정리하고 노트북과 모니터에 전원을 넣어 정면과 우상방의 화면을 마주하고 있으면 가끔씩은 뭔가에 단단히 잡혀 앞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게 게임에서나 몰아 보던 전투기 조종석의 느낌일까. 그래서일까. 어딘가에 당분간 눌러앉기로 한 뒤에 그 곳에 내 작업공간이 잘 갖추어지면 그 자리를 조종석이라 불렀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 나를 욱여넣고 한 쪽 날개를 골판지 박스로 때운 채 일상을 몰고 있었다.


연고도 없다시피 하고 친한 사람들도 멀리 있는 서울에 혼자 있으면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은 직장 사수 아니면 옆자리 동료이고, 이따금 코로나가 심해지면 재택이랍시고 귀한 책상 위에 누추한 회사 랩탑을 올려놓아야 할 때도 잦았다. 그러다 보면 봄날은 개뿔. 회사 사람들은 가끔 상대 소개도 없이 내게 만남을 종용했는데, 그들 스스로는 어떻게 외로움을 풀었을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 코가, 아니 정확히는 내 허리가 석 자가 될 판이었으니까.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그저 책상 앞에서 화면이나 보고 앉아 있는 것인데, 그러다 자정을 넘겨 스탠드만 켜고 책상에 - 당연하게도 - 혼자 앉아 있을 때면 그 모습이 연구실에서 밤샘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나오고는 했다.


다만 이런 생활마저도 무언가를 세워나가기에는 요족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더 잘 돌보는 일 같은 것. 이를테면, 직장에서 월요병 환우들끼리 주말에 뭐 했느냐고 물으면 가정을 돌보았다고 하는 것. 쿠쿠를 시키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이 지어져 나오기야 했지만, 그 쌀은 내가 씻어야 하고, 밥만 먹을 순 없으니 찌개를 끓이거나 양배추를 찌게 되는 일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차라리 청소는 좀 나았을까? 기숙사에서도 하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떠넘길 사람이 없는 것이 버거워서, 집을 옷장 겸 침대로만 사용하게 될 정도로 바빠질 때면 이러다 온 가정이 무너질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찾아오는 휴일이면 월세를 값지게 쓰고자 노력했다. 월세는 고정지출이므로 사용 시간을 늘려야 가성비가 올라가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하고 나면 책상에 앉아 드라마 따위를 보거나, 아니면 이따금씩 노트북에 내가 찍은 사진을 걸어서 현상하거나, 어딘가에서 잠깐잠깐 고친 문단들을 모아 글을 만들고 다듬는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일이 무엇인지 혼자 알아가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빠듯하게 지나가는 그런 일주일들을 숱하게 세웠었다. 몇 개의 지나간 책상들에 이어 지금 옆에 아무도 없는 이 책상에서. 잠시 조종간을 놓는 순간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제정신을 차리지 않다가는 비행착각을 일으켜 땅이나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말까 봐 두려운 그런 나의 조종석.


우연이나 임기응변을 곁들여 어떻게든 간다. 내일은 똑같더라도 모레쯤에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다시 오른편의 박스에 물건을 담을 때까지는 이 방에서 견뎌 보는 거다. 어디가 됐든 이 방보다 나은 점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다짐하면서.



작가 김저니

다른 종류의 글쓰기로 먹고 삽니다. 간혹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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