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수강생 베니수의 글
살아남았더니 몸이 참 불편했다. 내 몸을 내가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엄마가 사라지고 거식 증상이 있었다. 엄마가 와야 먹는다는 것처럼 혹은 엄마를 잃고 난 후의 상실감을 공복감이라는 몸의 반응과 감각으로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먹진 않았지만 스쿼트를 했고 먹진 않았지만 산책을 갔다. 샤워를 하다 보면 눈앞이 노랗게 변하고 환각이 보였다. 하지만 죽진 않았다. 죽기도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누워 있는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핸드폰이 있었고 OTT 서비스가 범람했기 때문이다. 먹지 않는 것은 익숙했고 콘텐츠는 매번 새로웠으므로 나는 말라가며 누워 있었다.
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춤을 추는 곳에서 나는 선택되어야 함께 출 수 있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었고 은근한 소외와 무시를 받아야 했다. 나는 안무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지만 '기본기'가 부족한 춤꾼이었으므로 '기본기'가 탄탄하고 몸을 유연하고 원하는 만큼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잘 추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남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몸을 움직여야 했다. 다른 사람이 만족하는 몸의 선을 만들고 어느 정도의 힘을 쓰고 어느 부분에서 멈춰야 했다. 그만큼 높은 힐을 신고 춤을 춰야 했으므로 평소에도 약했던 오른쪽 발목은 자주 꺾였다. 습관적으로 꺾이는 발목은 걸으면 힘을 줄 수 없어 허리가 뒤틀렸다. 오른쪽 허리가 아렸다. 옷 가게에서 일을 하며 10kg 박스를 매일 여덟 개씩 옮기고 뜯고 정리하다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누웠다. 남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누워야 했다.
동아리를 8년 정도 하고 나니 움직임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울 속의 내 몸과 나라는 존재가 어긋났다는 느낌은 떠나보낼 수 없었다. 몸이 어떻게 생겼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멋' 없음이 문제였다. 동작에 멋이 없으니 화가 났다. 왜 자꾸 그렇게 목을 빼고 움직이는 거야. 왜 스텝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거야. 왜 안무를 자꾸 까먹는 거야. 왜 금방 할 수 없는 거야. 내가 만일 멋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멋을 연습하고 싶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든 네비게이션처럼 경로를 재설정하길 반복했다. 언젠가는 누군가를 잘 챙겨주면 멋져 보일까 싶어서 만나는 후배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음료수를 샀다. 조언이랍시고 남자 얘기만 하는 언니에게 그런 남자 그만 만나고 다른 취미를 가져보라고 했고 안무 진도를 나가다 춤은 안 추고 떠들고 있으면 매섭게 동기를 노려봤다. 이렇게 멋져 볼까. 저렇게 멋져 볼까. 그런 것은 진짜 멋있는 것이 아니라서 나는 싸가지만 없고 잘난 체 하느라 바빴다. 실상은 밥을 같이 먹으면 불편해서 체 할 것 같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외면하면서.
탈가정하면서 주거지를 옮겨야 했고 바다를 건너 제주로 왔다. 나는 짐을 풀며 생각했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뭐가 있을까. 살아오면서 그리고 살아남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 멋이고 뭐고 자기 돌봄이 먼저다.
하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바다로 간다고 하면 아무리 처음 만났더라도 차에 덥석덥석 올라타서 함께 바다로 갔고 먼저 같이 가자고 물어보지 않아도 같이 가도 되냐고 빈대떡처럼 뒤꽁무니에 붙어서 갔다. 트럭은 사람을 옹기종기 태워 바다로 갔다. 우리는 쫄딱 젖어서 배고프다며 노래 부르며 돌아왔다. 그곳에서 아주 많이, 많이 춤을 췄다. 그곳에 거울은 없었다. 거울에서 마주 뗀 손을 떼고 투명하게 비치는 바다에서 나체로 둥둥 떠 있었다. 바닷물이 차가워서 짬지가 찌릿찌릿했다. 머리카락도 짬지 털도 미역처럼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짬지를 돌봤다. 소금기가 남아 있는 부분을 올인원 비누로 검지와 중지로 사이사이 씻은 후 수건으로 꼼꼼히 닦았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창밖을 보느라 바쁘면 자위를 했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클리토리스를 혹은 질 입구를. 쥐거나 누르면서 탐험했다. 발가락이 어떻게 모이는지, 자위를 하고 나서 숨은 어떤지 목은 마른지 살폈다. 친족 성폭력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자극과 쾌락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가는 것도 몸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짬지를 돌보는 것은 야하고 야한 건 즐거울 때도 있어서 나는 열중했다.
누군가와 몸이 닿는 일은 여전히 어색했다. 친구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친구는 쪼그려 앉고 나는 그 친구가 피던 것을 몇 모금 빨았다. 직장을 구하다 드디어 취업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내가 축하한다고 한순간, 친구가 옷자락을 쥐더니 기대려고 했다. 오른 다리에 친구 머리가 닿았다. 상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나는 얼었고 걔는 기대고 싶어 하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자기 돌봄을 한 적 있다고 해서 타인의 몸의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공동체에게 휴식처이자 안식처가 되었던 건물이 있었고 무너질 예정이었다. 그 건물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창조와 파괴 그 사이>라는 이름으로 파티를 연다는 것이다. 비건 음식을 먹고 춤을 추자며 초대장이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친구들이 내 이름을 크게 호명하며 반겼다. 호박과 배추 메밀전, 채소 찜 스프, 제주 빙떡, 두유 두부 리조또와 달달한 제주 당근, 샤인머스캣과 무화과가 촘촘히 박힌 비건 빵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나는 바로 앞에 있던 끈적한 정과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귤의 시트러스 향이 났다. 입으로 넣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만들었냐고 당장 만든 사람을 붙잡았다. 귤을 통째로 설탕에 절인 다음, 8시간 햇빛에 말리면 정과가 되는데 설탕이 스며들어서 쫀득하고 달달해진다고 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나는 꼭꼭 씹어 들었다. 나는 채소 스프와 빵과 정과를 번갈아 먹으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나는 포만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배가 부르니 저절로 상체가 뒤로 기울고 손이 바닥을 짚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 트림을 하고 물을 마셨다. 흥미로운 주제가 나오면 들으며 메모했다. 웃으며 대화가 마무리할 즈음이 되자 우리는 식탁을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누군가 노트북으로 노래를 준비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하고 누군가는 불을 이것저것 껐다 켜보고 있었다. 나는 겹겹이 입었던 두꺼운 니트를 벗고 가벼운 긴팔 차림새가 되었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움직일 시간이다.
끝.
(2023.02.04)
작가 베니수 Beny Su
1996년생
고양이 ‘찰랑이’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