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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May 06. 2020

코로나시대의 비만
- 47을 떠나보내며 -

4월 하마글방 수강생 고구마의 글

봄을 맞아 흰색 치마를 샀다. 지난주에 산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옷이 내게 작아서 내 몸이 더 눈에 들어왔다. 불룩한 배와 굵어진 옆구리. 체형이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매일 체중계에 오르고 있었기에 늘어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한 후 난 원피스를 반품했다. 새로 산 치마는 내게 잘 맞았다.     


   올해 초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내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한 줌 남은 지인들과의 약속, 수강하던 강의들이 취소되면서 외출 횟수가 점차 줄어갔다. 온라인으로 모든 상품을 주문할 수 있게 되자 생존을 위한 외출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다. 2월부터는 인생에서 외출이 사라져 버렸다. 이때부터 난 SNS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구경만 하던 나도 어느 순간부터 레시피를 모으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봄나물을 이용한 파스타도 만들어 먹었다. 매일 새로운 요리를 고민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철 음식 재료와 에어프라이어를 집에 들여놓았다. 세상에.     


   2월부터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 만두, 버섯, 단호박, 핫도그와 같은 음식을 매일 구웠다. 프라이팬에 봄나물, 버섯, 당근, 배추, 아스파라거스를 열심히 볶았다. 아버지와 별을 위한 영양식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음식을 매일 먹으니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침대에 들어가 새로운 레시피를 찾기 위해 SNS를 열심히 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요리를 먹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요리 실력이 눈에 띄게 늘자 점차 요리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거울을 보니 내 키가 커진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어 체중을 확인해 보니 아니라 다를까 꽤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는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까지 몸집도 키도 작았는데 나는 그해 겨울부터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키와 체격이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또래들이 나보다 작았다. 165cm에 47kg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난 어깨가 넓고 골격이 커 말라 보이지 않았다. 이때쯤부터 마르고 가녀린 체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중에서 파는 옷들의 사이즈는 어느새 '프리사이즈'로 통일되고 있었다. '프리사이즈'가 맞지 않는 체형이었던 나는 살 수 있는 옷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엄마는 내게 매일 살을 빼라고 했고, 친척들 앞에서 나를 뚱뚱하다고 묘사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내게 어느 부분의 살을 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나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살을 빼야 하는 아이로 분류되었다. 사람들은 마른 이들을 좋아했다. 날씬하지 않은 사람은 게으른, 못생긴, 냄새나는 등등으로 묘사했다. 나는 여러 곳에서 상처받았고 음식을 삼키기 무서웠다. 정말 오랫동안 난 47kg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이제 살이 찌면 그냥 새 옷을 산다. 많은 시간을 살이 찔지도 모른다는 혹은 살이 쪘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다가 지쳐버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말라 보일 수 없는 체형'임에 절망하며 내 몸을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살과 싸워온 나는 이젠 먹고 싶은 음식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양껏 먹는다. 싸움을 끝내고 새 옷을 사며, 나는 팔과 다리가 굵어 '프리사이즈' 에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길어 맞는 옷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내 몸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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