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그의 이름은 세상 각지로 지류를 만들며 흘러 들어갔고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 드디어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작년부터 몇 권의 책에서 낯선 그의 이름을 보았다.
최근에는 성석제 선생의 에세이집 첫 장에서, 인친인 고요한 작가의 기형도 문학관 소개 글에서 또다시 그의 이름을 보고서 더 이상 그 만남을 미룰 수 없는 운명임을 그제야 깨우쳤다.
가을을 반기듯 이어진 두 번의 긴 연휴 동안 드디어 그와 조우했고, 함께 아파했고, 같이 삶의 희망을 찾으려 했다.
그의 시, 소설, 산문, 일기 그리고 서평까지 그의 모든 유작들이 담긴, 성석제 선생도 참여한 <기형도 전집>에서.
이 책에 담긴 글 외에 더 이상 그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아직도 여전하다. 그나마 그의 유작을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는 앞으로의 나날들이 있다는 것이 다시금 위로의 힘을 준다.
'이것이라도 있어서 감사하다고...'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기형도 선생의 시, 소설, 산문을, 아니 그 유작을 다 볼 수 있는 책을 입양했다. 누군가가 읽다가 중고서점으로 갔다가 나에게로 온 책의 상태가 좋다. 중고책만이 주는 묘한 느낌 위에 나의 설렘을 얹어 드디어 그와의 조우를 시작한다.
그의 시들을 쭈욱 읽어가고 있다. 내 시심의 얕음이 바로 드러난다. 하나하나 이해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신선하고 깊다. 세상사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진눈깨비 - ... 진눈깨비가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의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 불행인지 행복인지 모르고 하루를 살아가는 무감각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시인은 삶에 대해 고도의 민감한 센서를 가지고 하늘이 준 필력으로 세상에 외치고 있는 선지자 같다. '삶에 둔감한 자여! 깨어나라'라고. <겨울, 우리들의 도시 -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 나는/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이 세상에서 애초부터/ 우리가 빼앗은 것은 무형의 바람뿐이었다./ 불빛 가득 찬 황량한 도시에서 우리의 삶이/ 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세상... > 언제 어떤 상태에서 이 시를 썼을까? 소름 돋도록 공감을 주는 이 시가 아프면서도 좋다. 시공간을 넘어 전해주는 그의 절규가 좋다. 화려한 도시 속 상대적 빈곤과 그 절망감에서 몸부림치는 그가 바로 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의 기록> 1988년 8월 2일에서 5일까지 혼자 떠난 휴가 기록. 책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의 종료와 함께 고의적으로 분실할 것'이라며 적은 어쩌면 일기 같은 기록들. 그 후 7개월 후 그는 세상을 타계하고 그 1주기를 맞아 세상에 책으로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끝이 자꾸 겹쳐진다. 더 이상 그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점점 더해지고 있다.
- 헤리의 외면 일기
사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 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차라리 나는 내가 철저히 파멸하고 망가져버리는 상태까지 가고 싶었다. 나는 어떤 시에선가 불행하다고 적었다.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고. 도대체 무엇이 더 남아 있단 말인가. 누군가 내 정신을 들여다보면 경악할 것이다. 사막이나 황무지, 그 가운데 띄엄띄엄 놓여 있는 물구덩이, 그렇다. 그 구덩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아직 죽음 쪽으로 가지 않고 죽은 듯이 살아 있는 이유를 그 물구덩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희망을 위하여 나는 대구행 첫 차표를 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