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인 '사랑'은 한자어 '사량'(思量)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기도 합니다. 생각의 양이 많으면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합니다.' - 박희석의 <질문하는 믿음> 중에서
이 글을 읽는데 임후남 작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책, 사람 그리고 자연으로 생각이 가득 찬 그녀의 산문집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과감히 도시생활에서 유턴한 그녀는 경기도 용인 어느 시골마을에 '생각을담는집'이라는 작은 책방을 차린다.
거기서 책방 지기를 시작하면서 그녀가 만난 책, 사람 그리고 자연 이야기를, 담백하고도 따듯한 필력으로 담은 산문집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 세 번째 산문집 <내 꿈은 신간 읽는 책방 할머니>다.
두세 페이지면 끝나는 짧은 글인데도 그냥 훅 지나갈 수가 없다. 공감 거리들이 마치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책좋사(네이버 책을 좋아하는 사람 북 카페 줄인 말)의 어떤 연으로 알게 된 저자. 얼마 전에는 책장에 오래 꽂아두고 잊고 있었던 그녀의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에 푹 빠지기도 했었다. 그녀의 산문이 그리울 즈음 나에게 입양된 책. 저자의 친필 사인 위에 '우리, 꿈꾸는 대로 살아요'라는 멋진 글귀. 또 어떤 일화들이 담겨 있을까? 설렘으로 그 첫 페이지를 연다.
'그는 매주 저녁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골책방으로 왔다.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데, 글이 참 좋았다... 그가 '어머니의 편지'란 글을 담담하게 읽어내려갈 때 나는 그만 눈물보가 터지고 말았다. (p11)' - 평생 글 한번 써본 적 없는 밥벌이를 잠시 멈춘 한 중년 남성.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세상에서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행복을 지금 여기서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를 보며 나를 본다. 퇴직 후 나도 느리게 책 읽으며 글 쓰는 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잃어버렸던 나를 조금씩 찾아가는 행복의 여정을 나도 걸어가고 있다. 생면부지의 그를 응원하면서 도리어 내가 더 힘을 얻고 있다.
임후남 작가의 글을 읽으면 마치 내가 책방 주인이 된 것 같다. 책방 문을 열고, 청소하고, 가끔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그러한 일상을 글로 쓰고 있는 '나'를 그리게 된다. 남다른 시선으로, 곰탕처럼 깊은 맛으로 우려내는 그녀의 글들에 점점 빠지고 있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와 책방을 시작한 지 어느새 5년... 삶은 외롭다... 책방, 시골책방을 하는 것은 고독하다. 그래서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걷고 종일 책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자연이, 책방이 나를 살리는 중이다.(p83) - 퇴직 후 나도 30년을 살아온 시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멀미 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탈출(?) 하고 싶었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시원함은 잠시, 모든 것이 '혼란'뿐이었다. 외로웠다. 그러면서도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놓치지 않고 더욱 깊이 파고들어 갔다. 그것이 이 새로운 시공간에 안착하게 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이 여명의 시간에도 이것을 기꺼이 하고 있는 이유다. 감사하다!
이 세 번째 산문집에서 임후남 작가는 꿈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아니 그것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의 실제가 있다. 청춘은 꿈을 가진 자의 것. 그래서 그녀는 지금 청춘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퇴직 후 흐릿해진 내 마음에 다시 꿈의 씨앗을 심어 준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응원한다. 책방 지기 작가인 그녀와 생각을담는집 책방을.
- 헤리의 외면 일기
나는 읽지 않는 이들이 쓰겠다고 하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읽지 않고 어떻게 글을 쓸까. 쓰기 전에 우리 모두는 '읽는' 사람들이며, 쓰는 사람이 되겠다 했을 때는 더 읽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자책을 잘 읽지 못하는 나에게 책은 책, 즉 물질로서의 책이다. 나에게 책은 단순히 그 내용만이 아니라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질감을 느끼며, 제목과 날개와 목차와 본문 등을 차례로 읽어가다, 마침내 이어지는 이야기에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거나, 혹은 좋은 문장 앞에서 가만 멈추거나 연필로 밑줄을 굿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하는 순간들까지가 모두 '책'이며 '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