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입시라는 부담도 있었지만 읽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몇 권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었던 책은 있었다.
중학교 때는 이광수 선생, 고등학교 때는 이외수 선생의 것.
어떻게 해서 그들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 또 그 내용이 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문학은 나와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조금이나마 그것에 궁금증을 일으키게 해 준 것은 그 당시 KBS에서 방영되었던 <TV 문학관>인 것 같다.
<주말의 명화>만큼이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이태준 선생의 <복덕방>, 마치 <TV 문학관>을 보는 듯한 영상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완성자인 그 당시 젊은 작가였던 이태준 선생이 일제강점기(1930~37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쓴 열 개의 단편들,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신선하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어떤 날 새벽, 1930.9> 애잔하다. 몸을 아끼지 않고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윤선생. 그가 잡도둑이 되어 두들겨 맞는다. 아~어쩌지? <꽃나무는 심어놓고, 1932.1> 짧지만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그 시대에 이런 소설을 쓰시다니? 해방 후 월북하셔서 더 이상 그의 소설을 볼 수 없다니 너무 아쉽다. <달밤, 1933,10> 황수건? 매력적인 인물이다. 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와 이 선생이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다. 이태준 선생의 소설! 이렇게라도 보게 되니 감사하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이런 위트 있는 글을 쓰시다니. 점점 그의 소설이 좋아지고 있다. 한 번 읽으면 쓱 읽히는 장편 같은 단편이다. '에세이 같은 소설'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무 일도 없소, 1931.7> 잡지 판매에 큰 영향을 준다는 상사의 명령에 따라 '에로'를 취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 이렇게도 신선할 수 있나? 현대 소설이라 해도 될 만큼 진부한 느낌이 전혀 없다. 짧지만 강한 그의 필력! 이태준, 이태준 하는 이유가 있구나. 검색해 보니 그의 전집이 7권으로 나올 정도. 그의 다른 소설들이 더 궁금해진다. <복덕방, 1937.3> 성공한 딸의 박대... 투자 실패... 결국 자살한 안 초시는 죽고 나서야 호사를 누린다. 이런 게 무의미함을, '계실 때 잘해!'라고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고요한 작가의 <고양이 안락사 - 어머니의 죽음 앞에 유산을 두고 자신들의 영리만 따지는 아픈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식으로서의 나를 반성해 본다. 지금 잘해드려야 한다.
- 헤리의 외면 일기
"나의 붓은 칼이 되자, 저들을 위해서 칼이 되자. 나는 한 잡지사의 기자가 된 것보다 한 군대의 군인으로 입영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감격으로 가슴을 울렁거리던 것을 생각하고 오늘 저녁에 유곽으로 '에로' 재료를 찾아 나설 것을 생각할 때 K는 자기 자신과 M사에 대한 적지 않은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간상배의 짓을 하면서도 어디 가서 조선 민중을 내세우며 떳떳이 명함 한 장을 내어놓을 수가 있을까? (중략) K는 벌써 다른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 하여야 크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기발한 '에로'를 붙들어서 제각기 우월감으로만 가득 찬 편집실 안에서 자기의 존재도 한몫 세워볼 수 있을까 하는 직업적 야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