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은 오늘 소개하는 하루키의 최근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오는 '나'처럼 나도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옮겨진 달이다.
32년간 몸담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일과 한강변이 보이는 곳에서 인왕산과 북한산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오는 동안 그림자처럼 나의 반려가 되어 준 이 책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그의 책을 꽤나 읽었다고 생각했다. 저자 프로필에 소개된 책들을 쭉 보는데, 웬걸 낯선 제목들이 너무 많다. 그의 유명세에 취해 마치 나도 그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반성으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연다.
'내가 가만히 어깨에 안고 있는 것은 너의 대역일 뿐이다. 진짜 너는 그 도시에 살고 있다.(p.17) - 야~ 이 전개 뭐지?!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진다. 마치 새로운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 같다. 매뉴얼을 꼼꼼히 봐야 잘 쓸 수 있는 것처럼 이 서두 부분에 힘써 집중하고 있다. 하나라도 안 놓치려고. 그러면서 점점 상상초월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1부를 다 읽고, 2부를 읽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뭘 말하려고 이런 장대한 이야기로 여태껏 끌고 왔을까? 그 끝을 빨리 당겨서 미리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루키에게 사십여 년 전 문예지에만 발표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으로 내지 않았던 동명의 중편 소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코로나 기간 동안 완전히 다시 써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장편의 소설이라고. 코로나가 온 세상을 꽁꽁 묶어 두었을 때 그는 이 세계 저 세계를 맘껏 오가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상상의 세계이긴 하지만. 코로나나 나이의 벽 앞에 멈추지 않고 소설가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그는 영원한 젊은이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은 않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 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 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