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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Aug 15. 2023

#윤형두 선생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어제 직장 후배였던 한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저녁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인데
그제야 퇴근하던 길에
불현듯 선배님 생각이 나서
전화드린 거라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그의 세 번째 직장,
벌써 7년째 다니고 있으며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기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고,
새벽까지 근무하다 퇴근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힘들지만 잘 견뎌내고 있다는 맑은 목소리에
안쓰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선배님! 저 독종입니다!'라며 그 이유를 늘어놓는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1년에 40권 정도의 책 읽기와
2주에 한 번은 글을 쓰고 있다고,
언젠가는 작가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지켜봐달라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응원의 마음을 담아
'멋지다! 후배 C야! 그 꿈 꼭 이루길 바란다',
그렇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런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작가가 오버랩되면서 떠올랐다.

해방과 6.25전쟁 때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한 소년이 있었다.

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당시에
책이 좋아 '대본(貸本)점'을 쫓아다니며 열독에 빠졌던
현 범우사 대표 윤형두 선생이 바로 그다.

책을 읽고, 구하고, 보관하고, 그리고 만들어 보급까지 하는
그는 현대판 '책에 미친 바보' 임에 틀림없다.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
인생 선배 윤형두 선생이
50대에서 60대 초반(86~97년)까지
여러 지면에 올린 짧은 글들이 여기에 담겨있다.

문고본이라고, 짧은 글이라고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된다.

책 좀 좋아한다고 깝죽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겸손의 마음을 선사해 주는 고마운 책이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늦게서야 문학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나에게 범우 문고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 리스트 (현재 333개)에 있는 책들을 한 달에 2~3권씩 구입하고 있다. 생면부지의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윤형두 선생도 그런 분들 중 한 분.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책인데 그가 범우사 대표, 수필가, 고서 수집가 그리고 출판업계 거목이라는 걸 책을 펼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진짜 책 좋아하는 고수를 만난다. 설렘 가득!

'호화 양장본이더라도 가볍게 읽힐 수 있고, 문고본에 중압감 있는 내용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p14)' - 멋진 표현이다!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윤형두 선생의 이 책이 문고본인데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 학교 갔다 오자마자... 대본(貸本)점을 향해 달린다... 김래성의 <진주탑>...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이광수의 <무정>과 <사랑>... <이태준 서간집>... 대학에 와서는... 월간 <상계>... (p25~26)' - 윤형두 선생에게 영향을 준 책들 소개가 낯설면서도 반갑다. 그에게 양서가 되어준 믿을만한 책들의 제목을 기록하는 즐거움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나도 이광수 선생의 책을 중학교 방학 때 읽었던 기억이 나고 이태준 선생은 얼마 전에 비로소 <복덕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와의 연결고리를 이렇게라도 찾아보고 싶다.

'유신독재정권을 비방하는 글이 담겼다 하여 책들은 모두 압수당하고... 지옥과 같은 남산 지하실에서 풀려났을 때에도 나는 곧바로 다시 출판할 책의 교정쇄가 나와 있는 조판소로...'책과 더불어 인생을'이라는 내 소신을 중얼거렸다... 나는 정신적인 식탁에 반찬을 마련해 주기 위해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p34~35) -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면서 겸손해진다. 책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억압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그는 책의 수호자다. 그의 인고로 만들어 낸 그 영양분을 30년도 훨씬 넘은 지금 내가 오롯이 먹고 있다. 정신 신탁의 반찬으로. 감사합니다. 윤형두 선생님.

- 헤리의 외면 일기  

프랑스의 사상가인 몽테뉴는 자기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세 가지의 교제가 있는데. 그 하나는 남성 상호간의 교제인 우정이요, 또 하나는 남성과 여성간의 교제인 연애요, 마지막으로 사람과 책의 교제인 독서라고 했다.  (중략)

우정과 연애는 우연한 동기에서 출발하고 또 상대의 태도에 달려 있다. 특히 우정을 맺을 만한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평생 동안에 기회가 그리 많지 않고 연애에 있어서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열정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책을 상대로 하는 교제는 현실성이라는 점에서는 우정만 못하고 즐겁다는 점에서는 연애만 못하지만, 언제든지 필요할 때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언제나 환영하며 또 누가 원하든 거절하지 않으며, 노년과 고독 속에서도 변함없는 위로를 준다고 했다.

- 윤형두의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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