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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작가 2

<김민정 작가의 결 따라 책 읽기 1>(25-2)

by 백승협

<김민정 작가의 결 따라 책 읽기 1>(25-2)

마흔을 목전에 두었던 김민정 작가를
지난해 늦가을 그녀의 첫 산문집
<각설하고>(2013)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 시인인 동시에
출판사 편집 일을 하는
그녀의 작가 인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결을 따라
책을 읽어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새해 처음
이제는 쉰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녀를 또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딱 십 년 만에 얻은 산문집'(p10)
<읽을, 거리>(2024)라는 책으로.

만남의 시간으로는 한 계절이 지났을 뿐인데,
책으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다.
그 사이 그녀는 난다 출판사 대표가 되어 있었다.

<시의적절>이라는 시리즈물을
기획을 한 난다 출판사,
그 대표인 그녀가 첫 주자로 나선 것이다.
'김민정의 1월'로.

횡으로 연결된 시간 속의 오늘을
종으로 쌓아 온 오늘들로 보고 있는 점이 신선하다.
인생 나이만큼의 오늘들 중에서
그 하나를 뽑고, 그렇게 한 달의 나날들을 채운 것이다.

이렇게 1월의 나날들을 묶은 <읽을, 거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읽어야 할, 거리>로 보인다.

그녀만의 색깔이 담긴 시뿐 만이 아니라
에세이, 인터뷰, 일기 등 그야말로
종합세트 같은 글들이 담겨 있다.

1월의 나날들 중에
아래 날의 글들이 특히 좋았다.
3일 (개그맨 고 박지선),
4일 (번역, 평론가 김화영 선생),
11일 (고 허수경 시인),
16일 (최승자 시인).
그녀가 아니었으면 평생토록 몰랐을
사람, 작가, 그리고 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친구가 대표로 있는 회사 사무실에 들렀다. 상암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 내에 있다. 그가 사준 점심을 먹고 함께 건물 주변을 걸었다. 어제보다 좀 더 거칠어진 바람과 따사한 햇볕이 우리의 걸음과 어우러졌다. 그는 한 기업의 대표로서 가지는 책임의 무게감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그 걸음에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그의 사업에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부하게 보이는 진실이 통하기를. '응원한다. 친구야.' 이후 그의 사무실 휴게 공간 한자리에 앉아 나는 다시 김민정을 만나고 있다. 가끔 하늘 공원과 노을 공원 사이에 있는 소각장 굴뚝이 쉼 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사위를 보면서.

<1월 3일 - 인터뷰 - 박지선>(한국일보 2018년 8월 18일)

개그우맨 고 박지선이 책을 찐으로 좋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미소. 잊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그녀와 친한 동료들이 애곡하며, 한동안 방송 출연도 멈추었던 그때를. 그녀가 읽었다는 책들이 도처에 나온다. 그중에 아래 책을 읽어 보려 한다. '김민정 : 참, 아까 그 김유정과 채만식 나오는 그 책 제목이 뭐였다고 했지요? 박지선 : <벗을 잃고 나는 쓰네>. 언니 이거 가져가요. 가져가서 써요. 언니 줄게요.'(p34) 2년 후 박지선은 김민정의 그 벗이 되었다. 책 제목처럼. 순간 눈시울이 적셔진다. 이 짠함, 어떡하지?

<1월 4일 -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 2013년 겨울호)

김화영 선생.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100권 이상의 책을 번역한 분이라니. 문학평론가이시기도 하고. 김민정과 선생의 티키타카가 정겹고 살갑다. 프로방스 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이신 선생은 그 당시 한국에는 생소한 작가들의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출판사들에게는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 선생의 고집스러운 추진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낸 책들이 독자의 반응을 받으면서 쭉쭉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먼저 감동받은 책을 번역한다는 소신이 이루어 낸 쾌거로 보인다. 나도 그의 덕을 본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 나는 3년 반전에 미셀 투르니에의 책 <외면 일기>를 읽고 오랫동안 멈추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글쓰기 나중에, 또 나중에. 그렇게 매번 미루며 왔던 것. 오늘 미셀 투르니에가... 매일 몇 줄이라도 써보라고 한다.'(나의 인스타, 2021.9.17 중에서) 그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분이 바로 김화영 선생이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마치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게 된 듯 기뻤다. 따라서 선생은 나의 은인이다. 앞으로 더욱 그의 번역서와 산문집에 관심이 갈 것 같다. 이렇게 또 한 분의 스승과 그의 책들을 소개받는다. 김민정 작가의 덕으로. 감사하다. '나는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내가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 쪽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 원작 자체가 내 맘에 들어야 번역을 하고 싶은 열정이 생기니까.'(p61)

<1월 11일>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출간으로 독일에서 귀국한 허수경 시인과 문학동네 시인선 론칭 기자간담회를 함께한 날'(p119) - 허수경 작가! 작년 3월 시인 박준의 소개로 만나게 된 이! 이미 저세상으로 간 이후였다. 허수경은 임종이 다가올 때 그녀의 마지막 시들을 김민정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2019)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깊게 애도하면서도 마음 붙잡고 이 책을 내기까지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의 여기 있는 책'(p123)을 봄이 오기 전에는 읽어야지. 허수경을 또다시 만날 생각에 내 마음에는 이미 봄이 찾아왔다. 최강의 한파가 찾아온 지금 이 순간에.

<1월 16일>

'1990년 1월 16일 화요일, 막냇동생들 생일선물을 사러 동인천에 나왔다가 대한서림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최승자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1995년 11월 27일 월요일, 수업이 없어 맑은책집에서 오래 머물다 최승자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을 골랐다. <어떤 나무들은> 이란 제목에 '아이오와 일기'란 부제가 바로 붙어 있는 책이었다.(p156) - 이 책들을 김민정은 '너무 좋아해서 이사할 적마다 잃어버릴까 싶어 가장 먼저 챙기고'있다고 했다. 결국은 김민정이 이미 절판된 그 책들을 개정판으로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2021년에 나온 이 책들은 아직도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예약 불가인 상태다.(참고로 예약을 3명까지 받고 있다, 1월 26일 반납일이라고 하니 그날 발 빠르게 3순위로 예약할 계획이다. 아니면 대출 가능한 타 도서관으로까지 가 볼 예정이다). 그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놀랍다. 김민정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에 대한 신뢰 지수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새해 처음을 그녀의 결을 따라 책 읽기를 참 잘했다, 자찬까지 해 본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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