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만 명의 회원이 되자 출판사 서평 이벤트 진행 문의가 점점 늘어났다. 그분들과는 주로 온라인이나 전화로만 소통을 했었다. 그중 유일하게 만난 분이 있었다. 그 당시 자음과 모음의 '강같은 평화'를 론칭하신, 강영란 대표님이다. 처음 뵙고 카리스마가 대단하시구나, 라고 느꼈던 첫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출판사 '샘솟는기쁨'의 대표가 되셨다는 소식을 주셨고, 지금까지 꾸준히 책좋사와의 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 후 두 번 더 만난 적이 있다. 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또 한 번은 작년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 날 스타벅스에서. 그때마다 남편되시는 이진호 대표님이 함께 하셨는데, 누가 봐도 예술가라는 것을 느낄 정도의 남다른 포스가 있으셨다. 역시나 유명한 사진작가셨다. 그 일을 하시면서 출판일도 돕고 계시다고 했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보수적이라고 소문난 기독교 출판계에서 지금까지 이 길을 힘들지만 잘 견디며 오신 분들이다. 영리보다는 사명으로 100권이 넘는 책을 이 세상에 내놓으셨다.
작년 두 번째 만남에서, 열정으로 대단하셨던 분들이 이 모든 것을 이제 그만 둘까? 심각하게 고민하셨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여려 표징을 통해 주님의 사명임을 재확인하면서 다시 충전해서 가기로 했다고, 하셨다. 응원의 마음을 치솟게 했다. 이전보다 속사람은 더 젊어지고, 꿈은 더 단단해져 가고 있음을 보면서 이런 신앙의 선배분들을 만날 수 있다니, 감사요, 영광이었다.
그때 장진희 사모님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느 개척교회 사모라고, 22년에 <마음에 길을 내는 하루>를 샘솟는기쁨에서 출간을 하셨다고, 그 책을 어느 국민일보 기자님이 보고 반해서 연재 칼럼을 요청했다고, 지금 즐거운 아우성을 지르며 글쓰기에 빠져있다고, 했다.
이런 경유로 알게 된 장진희 사모님이 1년 동안 국민일보에 연재한 글들과 또 다른 글들을 <당신이 내게 준 길입니다>(2024)에 담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 보았다.
읽는 내내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The Message> 시편 4:6-7의 말씀이 떠올랐다.
'왜 다들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일까? 맨날 "더! 더!" "더 많이! 더 많이!" 그러나 내게는 하나님이 있어 차고 넘칩니다. 평범한 하루 내가 누리는 이 기쁨이 날마다 흥청거리는 저들이 얻는 것보다 더 큽니다.'
누구나 흘려보내고 있는 일상에는 온갖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유한함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다. 거기다가 남 탓으로 돌리기를 쉽게 한다. 그러면 순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장진희 사모에게도 이런 나날들이 다반사다. 원망하고 불평해도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는 일들이. 아프고 힘들지만 거기에 잠식되지 않으셨다.
예기치 않은 거친 파도나 급류를 만나도 잔잔한 물결로 유지하려 애쓴다.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따뜻한 터치라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려 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저자의 필력 위에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원망도 체념도 공허도 아닌 살아 낸 감사의 꽉 찬 삶'(p113)이 담긴 이야기다.
뭉클함과 공감이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눈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엄마에게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을 나는 분명 엄마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로 나라고 하는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 지금의 나를 여기 있게 했다.'(p35) - 어릴 적 감꽃을 한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어대는 친구의 배고픔을 아시고, 쟁여놓은 밀가루를 풀어 부침개 해 주셨던 어머니... 감을 따는 간짓대를 만들어 하늘만큼 풍성한 감들을 따주시던 아버지... 부모에 대한 이러 저런 사랑의 흔적을 장진희 사모는 회상하고 있다... 지금은 두 분 다 요양원에 계시며 그분들의 삶의 터전은 묵정밭이 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그분들의 딸 장진희 사모는 이제 성인이 된 두 딸의 부모다. 인생이란 이렇게 사랑의 끈으로 대를 이어 간다. 2년 반을 모시다가 부득이 요양원에 모셨던, 몇 해 전에 소천하신 장모님이 생각난다. 못 해드린 부분이 가시처럼 돋아난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머니는 오늘도 '길 조심하라, 춥다, 마스크 해라, 옷 두껍게 입고 가라'라고 산책 가는 자식을 챙긴다. '예'라고는 해놓고 아직도 잔소리처럼 가볍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이렇게도 어리고 못돼먹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부모의 눈물이 만든 작품이 '나'라는 것, 다시금 되새겨 본다.
'우리 딸은 회사에 출근한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해 보겠다면서 사회로 출발했다. 여전히 종양은 뼛속에 있고 다리는 연약하지만 딸의 고백처럼 세월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 편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 세월을 기적으로 일궈 나갈 것이기에 힘이 난다. 딸처럼 아픈 아이들을 위해 속히 치료제가 개발되길 기도하면서 오늘도 기적 안에서 우리는 살아간다.'(p95) - 김진희 사모에게 일상의 평온을 깨는 사건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 딸 솔에게 병이 찾아온 것이다. 평생 약도 없이, 고통이 오면 오는 대로 감당해야 한다는 희귀병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런 중에도 딸은 대학까지 졸업하고 마침내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 여정을 회상하며 엄마로서 겪었던 아프고 힘든 삶의 독백이다.'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책이나 설교에 나오는 말이 한 가족의 삶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나 아프니? 이보다 아프니? 꾀병은 이제 그만 부려'라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바라보게 된다. 그 앞에서 감히 그보다 아프다고 말할 자 있는가? 장진희 사모님과 딸이 걸어간 길을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길도 되새겨 본다. 신실하신 주님이 늘 함께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가 넘친다. 할렐루야! '내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으니, 주께서 나와 함께 걸으시기 때문입니다.'(유진 피터슨 <The message, 시편 23:4 중에서)
"저기 내가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예, 할머니 물어보세요." "내가 치매일 때 어떤 모습인지 본 적 있을까요?" "언제나 정갈한 모습으로 성경책을 읽고 계셨어요." 할머니의 얼굴이 밝았다.(p145-6) - 치매라는 것이 일상의 용어가 되었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자가 누가 있겠는가? 80대 중반이신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면 안 된다,라며 치매예방 유튜브 동영상을 보시거나 퍼즐 맞추기를 하신다. 1000 피스짜리는 며칠 새에 맞추어 놓으신다. 최근에 큰 손자가 할머니 생신 선물로 2000 피스짜리를 드렸다. 이번에는 녹록지 않으신지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흥얼거리면서 틈나는 대로 맞추고 계신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치매라는 놈이 오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오더라도 주님이 주신 이 믿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책에 나오는 치매 상태 속에서도 성경을 읽으시는 할머니처럼. 매일 저녁 10시에 성경 읽기를 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습관적이라도 이것은 꾸준히 해야겠다.
'오늘은 누군가 우스갯소리처럼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나이 들면서 지켜야 하는 것은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는 말.'(p167) - 나이 들어간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깊게 느껴지는 나에게 이 말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동안이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은근히 뭐라도 되는 양 우쭐대던 때가 있었다. '동안'이라는 말과의 결별은 순간적으로 찾아왔다. 50대를 넘어서자마자 당 전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체중을 10킬로가량 뺀 적이 있다. 지금까지 요요가 오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지만 부작용으로 얼굴에 살이 빠지면서 폭삭 늙어버렸다. 이제서야 내 나이 찾은 것일 뿐이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인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이 글을 보면서 이제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동심'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정채봉 선생이 떠오른다. 봄이 오기 전에 꼭 다시 뵈어야지, 작은 노트에 그분의 이름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