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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작가

<김민정 작가의 결을 따라 책 읽기 2>(25-4)

by 백승협

최승자 선생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1990)는

이미 절판된 책이었다.


난다 대표 김민정은 이사를 할 때마다

이 책을 소중히 챙겼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개정증보판을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그녀가

2021년에 세상에 다시 내 놓았다


몇 년 전에 나온 책인데도

그 인기는 대단한 것 같다.

내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에는

예약 불가일 정도다.


구입을 해야 하나, 하다가

구립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갔다.

검색을 해보니 집에서 가까운 한 곳에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지도 앱을 켜고 낯선 길을 따라 찾아갔다.

(서대문에는 도서관이 두 종류가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산하의 도서관 하나와

크고 작은 구립 도서관들이 곳곳에 있다.)

나는 주로 전자를 이용하고 있다)


주민센터와 같이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사서 한 분, 독자는 나를 포함해

한두 분 정도. 집 가까운 곳에

이런 도서관도 있었구나, 감사했고

이 책을 보는 순간 그 반가움 상당했다.


그렇게 입양된 이 책을 통해

이십 대부터 육십 대 초반까지

최승자 선생의 인생을 만났다.


'전부 해서 4권, 약 200여 편의 시가 될 것 같은데 그 시들 을 통해서 나는 참 많이 죽음을 노래했던 것 같아.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라 절망, 고통, 아픔, 기타 등등, 행복의 감정이 아닌 것들은 모두가 죽음이지...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면서, 끊임없이 죽음과 불행과 절망을 토해 내던 쥐, 그 쥐의 울음, 그것이 내 시들이었을까?'(p160-1,163, 1998년)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눈이 조금씩 내리는 잔뜩 흐린 날, 이 책을 반려로 입양하기 위해 지도 앱을 켰다. 가까운 길 안내다 보니 어딘가 깊숙하고 좁은 곳으로 자꾸 들어가는 듯했다. 다다른 곳은 도서관 후문이었다. 큰 길로 오면 더 넓고도 쉬웠을 것 같았지만 낯선 길을 걷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도서관, 미리 조회한 책 위치를 보면서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이 반가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을 손에 넣고는 다섯 남짓 앉을 수 있는 탁자에 앉아 이 순간을 놓칠까 봐 잠시 글로 남기고 있다. 눈발이 점점 세지면서 더욱 어두워지고 있는 오후녘에.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내가 꿀 수 있는 꿈이 자꾸 줄어들고, '인간답게'라는 가치 기준이, 진리가 자꾸 모호해져 간다... 결국 그 거대한 타의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답게 죽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항해서 싸우는 필사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에도 나는 이를 갈며 일어나 앉는다.'(p13-4)

- 청춘 시절에 한 번씩 겪는다는 이 쓸쓸함을 나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육십을 문턱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어쩌면 이 쓸쓸함을 애써 외면하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가시 같은 자극들에 점점 무뎌지는 것이 처세라고 자위하면서. 이런 글들을 갑자기 맞게 되면 감각 무통증인 듯한 나를 불편하게 돌아 보게 된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타인의 의지에 맞추느라 비굴했던 그 몸부림의 모습들을. 생계라는 이유로. 그때가 바로 쓸쓸한 때였다는 것을 되짚게 된다. 오늘은 책이 나의 정신과 의사로 다가온다.


'나는 내가 일찍 죽을 것이며 아마도 자살을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나는 비로소... 시간을 내 몸과 정신으로 헤아리고 그 부피와 질량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조심스럽게 행복의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니와, 그것이 내 어머니의 뜻일 것 같기도 하다.'(p55)

- 감명 있게 읽은 책의 저자들 중에 생을 자살로 마감한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여전히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승자 선생의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에게 감명을 주는 작가는 이런 충동을 느낄 수도 있구나, 했다. 다행이다. 최승자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 그 죽음의 그림자를 죽인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이 관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의 빈곤율이, 청년의 실업률이... 그 이유라고 하는데... 견딜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 충동에 시달리는 분들이 있다면 제발! 최승자 선생 같은 자각으로 행복의 가능성을 다시 타진해 보길 바라본다. '죽음은 언제나 유혹처럼 감미롭게 찾아드는 '다른 손길'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내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느꼈다. 그것은 현실적이고 비참하며, 피할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도망가버리고만 싶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또한 죽음은 내가 생각하듯 한순간의 뛰어오를 듯한 슬픈 희열 혹은 고통의 쾌락 같은 게 아니었다.'(p52-3)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아닌 새로운 호칭들은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처음으로, 그야말로 느닷없이 날벼락처럼 가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p79)

- 최승자 선생은 대학 시절 한 노교수로부터 '미스 최'로, 나이가 좀 들어서는 '아저씨 없는 아줌마'로, 첫 시집을 내고서는 독자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렸던 때를 기억하며 그것이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편안한 호칭'이 되었다고 했다. 이 일화를 보며 지금까지 불렸던 나의 호칭이 떠올랐다. 초등시절에는 성이 백씨라고 '백곰'으로, 결혼하고서는 '누구 남편, 누구 아버지'로, 직장에서는 승진 때마다 성에 직급을 붙여 다르게 불렸다. 퇴직을 하고 나서, 직장 퇴직자 모임에 가니 선배들이 'ㅇ사장'이고 부르는데 얼마나 어색했는지... 지금은 글쓰기 초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백작가'로 불리고 싶다. 그렇게 불려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다. 이를 위해 오늘도 이렇게 몇 자라도 적어 보고 있는 것이다. 파이팅! 미래에 불릴 '백작가!'


. 샐러리맨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똑같고, 그 하루가 모두 작은 불안, 불만과 지겨움들로 달그락거린다. 그들은 일 전체를 통괄하지 못하고 언제나 한 부품으로서 존재하며,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위 부품에서 상위 부품으로 옮아갈 뿐이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술집들이 생겨나고 밤마다 그 술집들이 흥청거리게 된다.(p98)

-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 합격 소식에 부산에서 급하게 상경을 했다. 다들 취직을 하니 나도 그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전공과는 무관한 부서에 발령이 나고, 그렇게 낯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32년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은퇴의 시간을 맞았다. 나름대로 잘 마쳤다고 자위하고 있는 나에게 이 글은 회한을 준다. '하위 부품에서 상위 부품으로 옮아갈 뿐이다'는 말에서 더욱 강하게. 86년도에 쓴 이 글이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세상이라는 점이 더 가슴 아프다.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저 애잔한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먼저 겪어본 자로서 어떤 위로의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 시에 대한 신앙도 믿음도 열정도 없고, 시를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기도 싫고, 시를 쓰고 나서도 마뜩지가 않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뭔가 미진하고 뭔가 아쉬워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인, 메마른 불모의 시인... 그런데도 시를 쓰는 한 나는 시인인 것일까?'(p128)

- 최승자 선생의 커밍아웃 같은 이 고백이 당돌하면서도 놀라웠다. 시인으로 등단한지 10년 이상이라면 품격있게 시론을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시인의 삶은 온갖 시어들로 장식되어 있을 것 같고, 일상이 시처럼 흘러갈 거라고 여긴 내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는 오히려 시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친근감을 더해 준다. 누구나 살아가는 인생을 시인도 살아가고 있다는 겸손의 말 때문에. 산책을 하다가 가끔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을 듣는다. 시인 박준과 티키타카 하는 케미가 좋기 때문이다. 25년 1월 17일 편에서 박준이 최승자 선생의 시를 낭독하는 게 아닌가? <과거를 치렁치렁>이라는 시였다. 선생의 책을 읽는데 이런 연결점이 만들어지다니 선생의 시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하게 한다. 들뜸과 설렘을 안겨준다.


. 앞서 나는 1980년대는(그리고 1970년대는) 내게 가위눌림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위눌림을 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이 그것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가위눌림에 대하여 시적 저항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저 항은 강한 비명과 비탄, 과격한 에너지를 가진 어휘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앞서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기대어 왔다고 고백한 것은, 나를 짓누르는 그 가위눌림에 관하여 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p140)

- 이런 연유로 세상에 내놓은 그때의 시집 3권이 궁금해진다. 가위눌림이 무섭고 싫어서 툭 튀어나온 선생의 비명을 듣고 싶다.


'나의 허망한 신비주의 공부 때문에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을 얻은 채로, 이제는 그나마 그 병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문학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문학책들도 부지런히 읽고 있다. (2013)'(p182)

- 절판된 책 위에 김민정은 1995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을 추가했다. 2010년의 글에 '12년째 정신분열증과 싸우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p172)라고 했고 2013년에는 노자와 장자를 만나면서 그 병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다는 희망과 다시 문학의 자리로 가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김민정은 2021년 이 책이 세상에 다시 나올 때까지도 여전히 아프시다고 했다. 역주해하듯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선생의 쾌유를 간절히 바라본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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