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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 2

<쓱 안긴 책 7>(25-9)

by 백승협


인스타에는
하트 모양의 '좋아요'가 있다.
그 작은 게 뭐라고
글을 올리고 나면 그 수를
자꾸 헤아리고 있는 나를 본다.

타인이 주는 다독임,
격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서 좋기에 나도 인친의 글에
가능한 성의를 보이려고 한다.

'바쁜 중에도 책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시네요. 파이팅!',
그 마음을 담아 누르다가
이 책 뭐지?, 하고 순간 멈추는 경우가 있다.

<구의 증명>(2015)도 그중 하나,
작년 가을 이렇게 최진영 작가를 처음 만났다.

새해 들어 김민정의 결을 따라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틈을 내 인스타 다독임을 하다가
또 어떤 책에 멈추었다.
바로 <어떤 비밀>(2024)!

최진영 작가의 산문집이라길래
바로 도서관 사이트를 열었다.
따끈따끈한 신간, 예약 대기를 걸고
한 달 이상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반려로 맞았다.

책을 펴자마자 나는
제주도에 있는 <무한의 서>라는
낯선 카페에 앉게 된다.
최진영은 쓰고, 나는 그걸 받아 읽는다.
마치 연애편지처럼.
그렇게 1년 동안 스물네 번,
3월 경칩에서 그다음 해 2월 우수까지.

소설이 아닌 편지와 산문으로
인간 최진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녀를 향한 팬심이 더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편지 속 친구와는 중학교 2학년 때 친해졌다. 나에게 처음 꽃을 선물한 사람. 그 친구를 이제부터 '제비꽃'이라고 부르겠다.'(p43)
- 책을 읽다가 나와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을 만난다. 누군가를 언급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때 최진영의 이 표현을 따라 하려고 한다. 누구를 이제부터 'ㅇㅇㅇ'이라고 부르겠다고. 가능한 그를 상징하는 단어를 찾아서.

'십대 때는... 파란색 펜을 사 모았다.'(p75)
- 최진영처럼 나도 십대 때 모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우표다. 그 당시에는 어느 기간 동안의 우표 발행일이 담긴 인쇄물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다가 그날이 되면 우체국에 일찍 가서 줄을 서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외할머니나 어머니가 대신 가서 사다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시기가 조금 지난 후에는 우체국에 돈을 미리 넣어 두면 새로 발행되는 전지 우표를 집에서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렇게 모았다. 엄마에게 철없이 떼를 썼던 것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우표에 대한 관심이 식어갔고 어느 순간 멈추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추억의 한 매듭이 지어진 것이다. 그때 모은 우표들은 아직 내 곁에 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사랑의 증표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께, 여전히 내 곁에서 마음 주시는 어머니께!

'한때 나는 살고 싶어서 글을 썼다. 이제는 더 나아지기 위해서 쓴다. 소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에게는 소설이 필요하다.'(p131)
- 여느 때처럼 안산 자락길을 걷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자락길 입구가 보인다. 거기서 살짝 비켜서면 사잇길이 있다. 몇 발자국만 걸어 내려가면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사위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풍당당했던 겨울이 그 기운을 다하고 있는 듯 유난히 따뜻한 오늘, 저만치서 봄이 일어설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 살짝 보인다. 거기 앉아 최진영의 책을 잠시 펼친다. 그녀가 소설을 쓴 이유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하고 있는 나. 은퇴 후 낯선 시공간에 떨어진 것 같았던 나도 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썼는지 모른다. '이제는 더 나아지기 위해 쓴다'는 소설 쓰는 최진영의 결을 따라가고 싶다. 앞으로도 책 읽고 그 몇을 날 것 그대로 쓰는 성찰의 나날들로 채우고 싶다.

'냉동실에 넣어서 꽝꽝 얼려도 좋을 겁니다. 우선 나를 보살피고 시간이 흐른 뒤 꺼내본 감정은 예전에 알던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p206)
- 감정이라는 놈이 내 삶에 앞장을 선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니 시원할 수도 있겠다. 대부분은 후회로 끝나겠지만. 최진영은 감정을 냉동실에 얼려 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꺼내 보면 그때의 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하면서고 정곡을 찌르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쑥 화를 낼 때가 있다. 특히 가까운 가족에게. 그러고는 바로 후회를 하고 사과를 한다. 이럴 때마다 좌절감은 상당하다. 잘 가고 있는 듯했는데 이렇게 쉽사리 무너지다니, 너는 안돼!,라는. 은퇴 후에 더 심해졌고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새해부터 아침저녁으로 일기는 아니지만 노트에 몇 자라도 적어 보고 있다. 난생처음이다. 이런 성찰이 '화'라는 놈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들쑥날쑥한 감정들 특히 나의 경우 '화'라는 놈이 일어날 때면 이런 '감정 냉동실'에 자동으로 보관되고, 순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기는 하겠다. 이 또한 요행심이지만.

'소설은 문장으로 만든 사진첩이다.'(p289)
- 그냥 넘어갈까, 했다. 아니 그럴 순 없지. 최진영에게 소설이 문장으로 만든 사진첩이라면 나에게는 작가들과의 만남을 담은 글들이 사진첩이다. 3년 넘게 꾸준히 인스타에 올린 것들 속에 그때 그 순간의 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은 나날들도 이렇게 채워가고 싶다. 이런 삶의 여정이 결코 허투루가 아니라는 위로를 준 최진영 작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파이팅! 나의 글쓰기!

'십여 년 전 어느 겨울, 소년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 됩니다. 서른을 넘긴 나는 조금 더 어른에 가깝고 춥고 무서워서 우리는 문득 연인이 됩니다... 작은 성당에서 우리는 부부가 됩니다. 불행과 비극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가장 큰 고민은 오늘 저녁에 뭐 먹지? 우린 진지한 토론을 거듭하여 그날의 고민을 해결한다... 당신과 오늘 한끼를 맛있게 먹는 것. 다른 고민도 그처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배우고 있다. 함께 어른이 되고 있다.'(p371,373,380)
- 이 책을 읽은 지금, 작년 가을 내 블로그에 올린 최진영 작가와 첫 느낌을 담은 기록을 열어 본다. 몇 번이고 읽어 본다. 그녀는 <구의 증명>을 쓰면서 누군가와 사랑했던 그 시절을 종종 돌아봤다고 했다. 이제 안다. 그 당시 이 소설을 쓸 만큼 아팠던 그녀의 사랑이 마침내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다는 것을. 늦게나마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어렴풋하게 그 단초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역시 소설가다. 마지막 편지에 그것을 속 시원하게 말해 준다. 이 사연을 읽고 어찌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처럼 이 책을 읽은 독자뿐 아니라 미래에 읽을 분들도 무조건 그들의 사랑에 하트 모양의 좋아요로 응원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가진 독자들도 위로와 희망을 얻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작가와 독자가 서로를 향해 응원을 주고받는 이 묘한 힘, 이것이 책이 주는 찐 맛 아닐까!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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