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홍준 작가

<재회 1>(25-10)

by 백승협


책을 읽다가 날 것 그대로 글로 써보는

시간을 3년 넘게 거의 매주 이어오고 있다.


그전 30여 년 동안 수 천권의 책을

읽어왔었다. 이 책들 중에 내 인생 책은?,

선뜻 말하지 못하는 나,

책을 읽기만 하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선 책 읽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 시간을 음미하기 위해

녹록지 않지만 그 순간의 감흥을

몇이라도 적어 보고 있고,

최근에는 가능한 두벌 읽기를 하려 한다.


책 선정에 있어서는

감사하게도 책이 책을 소개해 주는

묘한 힘에 이끌려 지금까지 왔다.

그 선순환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중이다.


새해에는 어떤 책들을 읽어 볼까?

노트에 큰 주제로 그 몇몇을 적어 보았는데

기존의 것에 더해 '재회'의 필요성이 떠올랐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 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안방과 거실에 놓여 있는

책장을 둘러보며 한때 푹 빠졌던 책의

작가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재회'라는 주제로 시작한 첫 만남이

감사하게도 유홍준 선생이다.

지금 앉아 있는 책상의 왼편에

그의 책들이 나란히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0>

(앗! 8권이 보이지 않는다.

이사를 하면서 유실된 듯. 채워 넣어야지)


선생이 최근에 그의 산문(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2024)를

내신 소식을 접하고, 도서관에 예약 대기를 걸고

한참을 기다린 후 이번에 조우한 것이다.


그의 화려한 프로필에 나오지 않는

호칭이 이 책에 소개된다. '글쟁이!'


'강연장에 가면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는데... 어느 경우도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중요한 한 가지 모습을 소개하는 곳은 없었다. 그것은 나의 글쓰기이다. 속되게 말해서 나는 글쟁이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문사(文士)이다.(p4-5)


글쟁이 유홍준 선생이 28년간 써온 글들 중에

한 권 분량으로 가려 뽑은 것이 이 책이다.

나는 여기서 인간 유홍준을 만날 수 있었고,

특히 그와 지인들(대부분은 소천하신)과의

우정 깊은 일화들을 들을 수 있었다.

유홍준 선생의 결을 따라 책 읽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설렘을 준 시간이기도 하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아, 나이가 드니 이제 꽃이 보이기 시작하네요."'(p35)


- 이 문장이 그대로 내 삶에 녹아지고 있다. 산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영하 15도의 한파에도, 오늘같이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도 산을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경고를 듣고, 오늘은 산책 예배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좀 기다려 보니, 그 지표가 확 좋아지진 않았지만 가 볼 만한 정도는 된다. 도서관에 갈 일도 있고 해서 무겁게 집을 나선다. 마스크를 쓰고 오르는데 숨이 점점 차기 시작한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벗어던진다. 잠시 후 만난 미세먼지 표시 알림판이 녹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잘 했다! 스스로를 칭찬한다.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덧 반환점에 이른다. 거기는 서대문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있는 언덕으로 운동기구도 여러 개 놓여 있다. 사위를 쭉 둘러 본 이후에 간단한 몸풀기 운동을 한 후 다시 내려온다. 새들이 봄의 메신저가 된 듯 경쾌하게 울고, 나목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봄기운을 마구 먹어 대고 있다. 그런 숲길에서 유홍준 선생과의 재회가 준 그 감흥을 몇을 카톡에 음성으로 남겨 본다. 그런 오후를 누리고 지금 책상에 앉아 그것들을 여기에 복사하고 수정 보완하고 있다. 요즘 산이 좋아지고 있다. 자연이 좋아지고 있다. 하늘이 주는 축복의 새로운 개안이다. 나이가 들어도 주눅 들지 말라는 위로다.


유홍준 선생의 책을 나는 왜 읽었지?,라고 되새겨 본다. 그의 책을 읽은 지가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선생이 문화재청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 정도는 있다. 하나 지금까지 선생을 잊고 살아왔다. 은퇴를 하고서야 이제 선생과 재회했다. 만나자마자 그는 28년 동안 쓴 글을 나에게 내민다. 너무 많아요?, 이걸 다 소화하라고요?, 내 마음을 읽은 듯 이것도 많이 줄인 거야,라며 미소를 지으신다. 친절하게 하나씩 나에게 읽어준다. 그러다 이제 네가 직접 읽어보라며 한 꾸러미를 넘겨준다. 며칠을 두고 읽다 보니 선생의 진솔한 인생을 보게 된다. '인인유책(人人有責 사람마다 책임 있다, 유홍준 선생이 중국을 답사하면서 배우고 싶었다는 마음의 자세 중 하나, p147)'이라는 사자성어대로 선생은 자신의 책임을 성실히 다하며 살아온 분이다.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만하다. 나의 인생을 반추해 본다. 나는 어떤 인생의 흔적을 남기고 지금껏 살아왔지? 생계의 문제에만 골몰했던 초라한 내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마이너스 통장을 플러스로 만들기 위해 고투를 벌이며 직장 생활 끝까지 달려온 힘겨웠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IMF 때 퇴직한 선배가 개인 부도를 내면서 그 보증금액을 내가 갚아가야 했던 일들... 등등이.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지만 건강하게 지금까지 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것에 감사하다. 그 길에 주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는 것! 인간의 본성을 쫓아 살아온 전반전을 이제는 제2의 본성(영성)을 따라 좀 성숙해지고 싶다. 나를 넘어 주변을 돌아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좀 살아가고 싶다. 그런 삶을 앞서서 살아가고 계신 유홍준 선생 같은 어른들이 아직 계시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 뒷모습을 나도 조금은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에 약간의 부담과 기대를 가져 본다. 파이팅!


. 옛날에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갑산과 삼수를 거쳐 혜산에서 올라가는 길이 정코스였다. 그 삼수와 갑산은 백두산 자락의 첩첩 산골이어서 삼수갑산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유배객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곳이다. 바둑에서는 절박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릴 때면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끊고 본다'라고도 한다.(p133)


-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이 글을 읽기 전까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말, 어릴 적에 자주 듣고 말했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이것의 유래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다 알 필요는 없겠지만 이렇게 알고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단어도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한 호기심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글 쓴다고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노력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반성해 본다. 글 쓰는 습관이 거의 없었던 나, 글을 써보겠다고 자리에 앉으면 도통 단어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말로는 쉽게 내뱉으면서도 막상 백지 앞에서는 멍해진다. 글맹중의 글맹인 것이다. 이것을 깨달을수록 글 쓰는 작가들을 더 대단해 보이고 존경심이 일어난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대충 문맥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가능한 잠시 멈추고, 국어사전을 펼쳐 보자. 기록으로 남기자. 내 생애 새로운 배움의 활력이 생기는 순간이다.


<제5장 스승과 벗>

- 유홍준 선생의 결을 따라 책 읽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설렘을 준 부분이다. 선생이 그의 스승과 벗들과의 일화를 담은 것을 보면서 여기에 나오는 분들의 책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일화의 한 토막들을 여기에 담아 둔다. 후일에 그들의 책을 읽을 때 그들을 소개해 준 유홍준 선생을 함께 떠올리기 위해.


. 리영희 선생

'리영희(1929~2010) 선생님은 내 결혼식 주례이셨다. 그때 선생님 나이 48세로 내가 첫 주례 제자였다. 리영희 선생님이 내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가 낳은 시대의 인연이었다... 이제나저제나 구치소(서대문)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데 곁에 있던 한 중년의 신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 출소했소?"

"예,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학생입니다."

"거, 고생 많았소."

"선생님은 누구신가요?"

"나, 리영희라고 하오."

"예에? 선생님! 반갑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세 번 읽었습니다."'(p229-230)


. 백기완 선생

'백기완(1932~2021) 선생은 평생을 민족통일, 반독재, 노동해방 운동에 앞장선 민주투사로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도 투쟁의 횃불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나 투쟁의 현장에서 돌아오면 백기완 선생은 사라져가는 민족혼과 민중적 삶의 싱싱한 정서를 고양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것이 <장산곶매 이야기>(우등불 1993)에서 <버선발 이야기>(오마이북 2019)까지 민중설화를 토속어로 이야기한 백기완 선생의 구비문학이다.(p241)


. 신영복 선생

'2016년 1월 15일, 우리 시대의 '참스승' 신영복(1941~2016) 선생님이 기어이 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이제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을 세상에 내보이셨을 때 나는 선방의 죽비가 내려치는 듯한, 솜방망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청춘과 중년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지만 그 철저한 차단에서 오는 아픔과 고독을 깊은 달관으로 승화시켜 진주처럼 빛나는 단상(斷想)들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던 것이다.(p252,254)


. 홍세화 선생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비평사 1995) 홍세화(1947~2024)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95년 봄, 홍세화는 마침내 원고를 완성하여 임진택에게 보내왔다. 세화는 책 출간의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하였다. 나는 이 원고를 전달받아 창작과비평사로 달려갔다. 당시 창작과비평사의 고세현 사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명저라고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출간 작업에 들어갔다... 내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의'에 포함된 개인적 감성이 대중적 동의를 얻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1995년 3월 25일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 시운전사>가 출간되었다.(p270,275)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유홍준 선생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일화들이다. 소중한 기록이다. 홍세화 선생의 책은 작고하신 소식을 듣고 급히 그의 책 <결 : 거침에 대하여>(2022)를 읽고 그 소감을 작년 5월에 남긴 적이 있다. 돌아보니 이것이 '재회'의 첫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영복 선생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을 감동 깊게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 내용은 까마득하다. 그 후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재회'로 신영복 선생은 만나고 싶다. 유홍준 선생의 결을 따라 책 읽기는 리영희 선생나 백가완 선생의 책을 우선으로 할 예정이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 ​


#헤리 #반려책이야기 #책을좋아하는사람 #책좋사 #책스타그램 #느림의독서 #반려책 #유홍준 #나의인생만사답사기 #창비 #리영희 #백기완 #신영복 #홍세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최진영 작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