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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작가(PD)

<최진영 작가의 결 따라 책 읽기 2>(25-13)

by 백승협

최진영은 그녀의 책에서

'요즘 정혜윤 PD의 <삶의 발명>을 아껴 읽고 있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사이사이 급한 일들로 잠시 손을 놓았습니다. 책은 내가 잠시 떠나도 그곳에서 저를 기다립니다. 책장을 펼치면 이야기는 이어지고, 나는 마치 살면서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한 사람처럼 몰두합니다.(p329, <어떤 비밀> 중에서)'라 했다.


정혜윤 PD?

그녀가 쓴 책을 작가 최진영은

아껴 읽었을 뿐만 아니라

몰두까지 했다고 한다.

어떤 책이길래?

그 궁금증을 따라

읽게 된 책이 바로

<삶의 발명>(2023)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홍콩 가족여행 내내

숙소에 두기만 했던 책,

그것을 펼쳐 본 것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다.


첫 장 <앎의 발명>을 읽고 나니

거의 도착 시간이어서 책을 덮었다.

이 책 예사롭지 않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다시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부산 여행지에서다.

낮에는 부산의 명소를 둘러보고,

밤에는 정혜윤 PD와 데이트를 했다.

이렇게 여행과 독서가 어우러지면서

정혜연 PD 말처럼 나의 삶에서

좋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삶은 좋은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마음으로 언제나 불러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에너지로 변해 나를 내 자아 바깥으로 끌고 나오고 움직이고 살아 있게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에너지는 이야기가 변신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향을 받는 이야기, 의미를 두는 이야기가 바뀌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고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바뀐다.'(P11, 들어가며 중에서)


이제 부산하면 정혜윤 PD가 떠오를 것 같다.

허연 시인하면 홍콩이 생각나듯이.

물론 이 두 작가를 연결해 준

최진영 작가와 함께.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앎'이라는 단어 뒤에 '지도'라는 단어가 붙으니 어떤 ' 앎'은 우리를 중요한 곳으로 데려다줄 단서처럼 느껴진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어떤 앎은 길을 잃게 만든다.'(P23)

- 정혜윤은 친구가 툭 내뱉은 말속에서 '앎의 지도'라는 것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고 한다. 결국 이것을 위와 같이 풀어냈다. 나도 이 말이 잊히지 않고 불현듯 자꾸 떠올랐다. '어떤 앎'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것이 삶의 지도가 되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한다는 경종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말은 그 선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한국 기준(22년)으로 하루에도 160~200권이 정도가 새로 출간된다고 한다.(챗 GPT) 이 많은 책들 속에서 고르는 것은 녹록지 않다. 개인적인 것이지만 요즘 나는 책 선정의 선순환을 체험하고 있다. 그것의 시작은 일여 년 전 박준 시인에게서 시작이 되었다. 그의 책을 읽다가 허수경을, 그녀의 책을 읽다가 이문재 선생을... 그 연결고리가 끝날 무렵에 우연찮게 만난 이정일 작가의 매력에 빠지면서 그 책 속에 담긴 낯선 작가들의 책들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그 후 신형철, 백가흠, 그리고 김민정의 결까지 이이 졌다. 지금은 최진영의 결을 따르면서 이렇게 정혜연 PD를 만난 것이다. 믿음이 생긴 작가가 소개해 준 낯선 작가들은 또 다른 믿음을 주었고, 그렇게 지연스러운 연결이 되어 가는 이 과정이 바로 내 삶에서 좋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나는 평생토록 놓치지 않고 싶다. 작가들의 글에 비추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들을 쌓아가면서 조금씩 나의 삶의 방향이 좋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삶을 이렇게 찾아가는 지금의 여정이 감사하고 고맙다.


. 지상의 거대한 공간들은 별들이 가득한 영원으로 통하고 있었다. 우리 자아 너머의 세계이다... 너무 애틋했다. 너무 경이로웠다. 숭고했다.'(p168)

- 자연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가?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 어린 시절, 저녁을 맞은 시골길을 걸으며 총총히 밝게 빛나는 별들을 우러러보며 우와! 했던 그 하늘은 내 마음에만 흐릿하게 있는 것 같다. 정혜연은 그리스 모넴바시아에서 이것을 보며 천상의 삶에 비추어진 세속의 찌든 삶을 본 것 같다.

지난 주간 부산 여행에서 이 정도는 아니지만 내게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소풍도 가고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가서 뛰어놀았던 산, 바로 구덕산을 간 것이다. 동아대학교 병원 정문을 끼고 산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여기서 어린 시절 수영을 하다가 산지기가 잡으러 와서 팬티만 입고 도망쳤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은 펜스로 다 막아 놓은 상태라 수영은 엄두도 못 낸다. 벚꽃과 목련이 어우러져 활짝 핀 그림 같은 풍경 속 저수지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잠시 조우하는 순간을 환영해 주듯 갑자기 분수쇼가 시작되었다. 와우!

경이로움은 그 저수지를 끼고 조금 올라가다가 맞은 것이다. 장대같이 우뚝 선 나무들이 이룬 숲을 보고서다. 세상에 나무들이 이렇게 키가 컸다고. 초등학교 교정과 어린 시절 살던 집 골목길을 어른이 돼서 가봤을 때 너무나 작게 여겨진 것과는 정반대의 놀라움을 준 것이다. 아무리 돌아봐도 이렇게 나무들의 키가 크고 울창하지는 않았어. 40년의 시간 동안 이들이 뭘 먹고 이렇게 자란 거지? 이들의 멋진 성장에 비해 나의 비뚤어진 성장이 왜소해 보였다. 겸손해지면서 지금부터라도 그들을 닮아가고 싶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이렇게 불현듯 나에게 찾아왔다. 집 가까이에 있는 안산, 거기에는 메타 스퀘어야 숲이 있다. 이들이 어떤 경이로움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직 나목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삶에 진짜 스승은 자연이다. 그들을 보면서 감탄을 회복하고 싶다.

'별이 가득한 우주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별은 신비로운 에너지를 흘리면서, 무한을 상상하게 하면서 그냥 거기, 그 모습으로 있는 것만으로 좋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밤하늘처럼 큰 세계가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렇게 놀라고 감탄해야만 가벼워진다. 감탄이 나의 힘이다.'(p169)


. 우리가 얼마나 애타게 지구를 돈을 벌어줄 자원으로 보고 싶어 하는지 잘 아는 아미타브 고시의 지도가 가리키는 출구 쪽 화살표에는 '이제 이야기를 바꿔라'라고 써 있다. 앞으로는 자연을 빼놓고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는 이야기 속에는 어떤 탈출도 해방도 없다.(p213)

- 이 문장은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고 싶어서 여기에 남긴다. 모든 것을 돈으로 보는 탐욕의 시선이 내 속에 생길 때마다 들춰보고 싶다. 정혜윤 PD의 남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여러 이야기들의 결론 같은 문장이다. 이것을 말하려고 이 한 권의 책을 정성을 담아 세상에 낸 것이다. 그녀에게 앎의 지도를 넓혀 주고 삶의 방향을 잡게 해 준 여기에 언급된 책들 몇을 더 읽고 싶다. 그녀의 또 다른 책을 포함해서. 감사하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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