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4>(25-18)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
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전혀 몰랐던 그녀!를
연속해서 만났다.
'이 글을 적는 동안에도 나는 최근에 나온 그녀의 소설집을 반쯤 읽고 있다. 점점 축소화되고 파편화되는 세상에 '다정함'의 시선으로 그것들을 연결하여 '종합적 사고'를 부여해 주는 것이 작가라고 하는 그녀의 소설을 빨리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연속적으로 한 작가를 이렇게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나의 블로그 <#올가_토카르추크 작가, 250604>중에서)
재회치고는
너무 빠른 것이었다.
보통은 몇 개월
또는 년을 넘어간다.
아니 사실
재회를 거의 하지 않는다.
결국 재회하는 작가는
나의 개인사에
큰 연으로 맺어진다.
소설집 <기묘한 이야기들>(2024)로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시공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한편을 읽으면
그다음은 어떤 기묘한 이야기일까?
소설의 첫 문장을 읽으면
그 끝에 또 뭐가 놓여 있을까?
읽는 내내 이런 기대 섞인 질문들을 하게 된다.
결국에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한 느낌'으로 끝나지만
그 여운은 진하게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 겨울 무렵에 만난
백민석 작가가 떠올랐다.
두 사람의 결은 다르지만
거침없는 상상력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카르추크는 주류에서 벗어나 지금껏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못했던 관점을 의식적으로 탐색하는 탈중심적인 자세, 기발하면서도 괴팍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벽(奇癖)'을 발휘하는 것이 문학의 새로운 소명임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신작을 쓸 때마다 새로운 형식과 문학적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토카르추크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에게 '우리 시대 가장 기발하고 비범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숙한 형식을 차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도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기벽을 소중히 가꾸고, 탈중심을 지향하는 작가의 문학관이 있다.'(p275,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요즘에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을 찾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쇼핑이란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과 흡사하다고 교수는 생각했다.(p102)
- 어릴 적 부산에 살 때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은하철도 999>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울트라맨 같은 어린이용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일본에 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에 살다가 전학 온 친구와 친해지면서 그 로망은 더욱 커져 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만화나 울트라맨 같은 캐릭터 카드들, 필기도구, 연필깎이, 보온병... 그가 들려주는 일본 이야기들... 성인이 되어 막상 일본에 갔을 때 그것들은 나의 관심을 더 이상 끌지 못했다.
글로벌한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들로 세계의 오지까지 안방에서 리얼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가면서 각국의 도시들은 쌍둥이화되고 있다. 얼마 전 홍콩에 가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 있는 것들이 거기에도 있어서 웬만한 것이 아니면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기 전에 유튜브로 갈 곳들을 미리 영상으로 봐서인지 신선함은 잠시요, 다시 방문한 것처럼 친숙한 느낌이었다.
쇼핑도 마찬가지다. 기념품을 살려고 해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물가마저 비쌌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대략 1.5배 수준이었다. '쇼핑이란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과 같다!'는 이 강렬한 문장이 결코 소설 속 이야기로만 넘길 수 없게 한다. 온갖 욕구를 다 충족 시켜줄 것 같은, 돈으로 치장된 보기에 화려한 세상은 점점 빈 깡통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나에게만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싶어 할 수가 있죠?"(p146)
- 소설 <트란스푸기움(라틴어로 탈주, 일탈을 의미한다)>은 이 질문을 쫓아가게 한다. 한 여자가 그녀의 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분명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또 나를 어떻게 놀라게 할까? 역시나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올가만의 '기벽'이 제대로 드러난다.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을 극도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과히 충격 그 자체다. "당신들은미-쳤-다-고."(P165).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언니에 대한 안타까운 동정도 일게 한다.
올가는 누구나 원하는 안주(安住)를 태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하고 괴이한 습관이나 성격을 '기벽'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돌아이'같은 기질이 유전자에 박혀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중심에 살고 싶어 한다. 변두리나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이 소설에 담고 있다. 탈중심을 장착한 그녀의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들이 이 푸른 지구별에 유해를 입히고 있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다정한 서술자'의 도움을 받아 소설로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올가 토카르추크(이제 그녀의 이름이 한 번에 써진다. 지금까지 계속 들춰보고 적었다)!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닫혀 있는 나의 시각을 조금씩 열어주는 그 영향력에 감사하다. 이 또한 정혜윤 PD의 덕이다. 날마다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옛 선조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진다. 책 읽고 그 몇을 이렇게라도 써보면서 나를 돌아 보는 시간에 감사하다.
. 쓰레기를 삼킨 소들이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 위장에 지니고 있었던 거예요. 소들에게서 남겨진 잔해는 그것뿐이라는 거예요. 소의 몸뚱이는 곤충과 포식자들에게 곧바로 먹혀 사라집니다. 영원한 것만이 남는 거죠. 바로 쓰레기입니다.'(p215, <모든 성인의 산(山)> 중에서)
- 이 소설집에는 '인류세'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거기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제한 없는 상상력이 더해져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로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 보인다.
이것들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으면서도 당장은 아니라는 방관에서 이제는 점점 무감증으로 굳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슈가 될 만한 큰 것들이 나타나도 그때 잠시 들끓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잠겨 버린다. 미세먼지는 이제 지표가 되어 일기예보와 함께 하고 있다. 플라스틱에서 종이 빨대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전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멈쳐버렸다. 그것들을 믿고 준비한 이들은 경제적 손실 속에 빠져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도처에 관심을 가지고 볼 것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생수를 사서 계속 마시고 있었다. 재활용 분리 때마다 엄청난 것들을 배출하고 있으면서도 다 그렇게 하는데, 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늦긴 했지만 마침내 지난가을에 셀프관리가 가능한 자그마한 직수 정수기로 바꾸었다.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바꾸어 나가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부터 작은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환경의 문제와 정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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