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3>(25-17)
올가 토카르추크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이 담긴 책
<다정한 서술자>를 읽고 나서
그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연이어 한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녀의 최근 소설집을 반쯤 읽고 있는 중에
도서관에 들릴 일이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이
담긴 책 <빛과 실>이 신간 서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떻게 이 책이 여기에 있지?
예약으로 지금은 대출 불가일 거라고 생각해서
읽기를 한참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이렇게 내 손안에 바로 들어오다니...
한강, 한강, 한강......
작가 이름이라고?
<채식주의자>라는 영화의 원작을 쓴 사람!
소설을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그녀의 책은 우선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던 때였다.
인문서적이나 경제, 경영서 신간이
나온 게 없나 하고 검색을 하다가
한강 작가의 신간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자는 생각에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반려로 맞았던 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서재에 놓여 있는 이 책을
지금 옆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몽환적인 기억만 어렴풋하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라는 작가의 말을 다시 펼쳐 보는데
그랬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눈으로만 읽고 기록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소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가벼워서일 것이다.
<빛과 실>에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읽고 나서는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2017년 12월부터 이 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 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서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칠 년이 지났을 때였다...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p23,25)
올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강 작가의 책을
몰아서 보려 한다.
그녀가 만든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연결되어 그 생생한 감각들을
느끼면서 나를 성찰하고 싶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 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p29)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p12)
- 나는 소설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마디면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긴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은 바쁜 세상살이에 맞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간편식 같은 책들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누군가 만들어 준 것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서 먹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내 것이 된 것 같았던 지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움켜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거의 남김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능력도 소멸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간편식 같은 책보다는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소설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삶이 그녀에게 던진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질문의 끝에 다다를 때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다음 질문이 또 다른 소설로 이어졌다고도 한다. '사슬'이나 '도미노'처럼.
그녀의 삶과 맞바꿀 만큼 좋았다는 그 장편소설들을 올여름을 나는 동안 하나씩 읽어 보려 한다. 그녀가 견디며 그 안에 살았다는 그 질문들을 나도 하나씩 대면하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소화하고 싶다.
. 소설이 출간되었다... 더 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는 원래 누구였던가? 예전에 나였던 사람은 이미 이 소설로 인해 변형되었으므로 이제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바꿔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텅 빈, 헐벗어 있는 이 사람은?... (p39-42)
-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 한 후의 기록을 이렇게 쭉 다시 읽고 있다. 특히 '예전에 나였던 사람은 이미 이 소설로 인해 변형되었으므로 이제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부분에서 찡한 뭔가가 느껴진다. 소설가는 그들의 소설이 나무의 나이테나 성장통과 같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독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소설을 읽기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한다. 소설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여기는 것에서 나를 변형시키는 기회로 소화해야 한다. 너무 진진한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찌 소설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 열다섯 평 대지에 딸린 열 평 집을 삼 년 전 봄에 샀다. 마혼여덟 살에, 내 명의로 온전히 갖게 된 최초의 집이다.(p87)
- 이렇게 시작되는 <북향 정원>과 연이어 나오는 <정원일기>(2021-2023)를 색인 중심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집의 일조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북향 정원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여러 식물들을 심고 기르면서 생긴 여러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특히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식물들에 주기 위해 거울을 계속 늘려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책상에 앉아 소설만 쓰고 있을 것 같았던 한강 작가가 그것들을 계절마다 시간마다 위치와 각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 상상이 잘 가지 않아서다.
'블루베리꽃 봉오리가 햇빛을 받은 아래쪽 가지에서만 부풀고 있기에 오늘은 거울의 각도를 올려주었다. 매일, 매 순간 빛이 달라진다.'(p105)
'가을에 햇빛의 각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날마다 배운다. 거기 맞춰 거울의 위치도 조금씩 바꾼다.'(p141)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p96)
이런 중에 <작별을 하지 않는다>를 출간한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북향 정원이 있는 그녀의 집이 떠오를 것 같다.
'4월 26일(2021) 칠 년 동안 써온 소설을 완성했다.
USB 메모리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저녁 내내 걸었다.'(p120)
북향 정원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는 한강 작가에게 집은 이제 친구가 되었다. 거기서 노벨문학상도 수여하게 되었고, 다음 소설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집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금방 올게'라고 말했다. 집이 친구 같다.'(152)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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