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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07. 2019

00. 악마의 멘토링을 시작하며

#반어의 매직 #한국아줌마의철학 



안 풀리는 연애 때문에 고민인 친구 A와 가볍게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기 위해 광주 충장로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신세한탄, 때 아닌 자랑, 현실적 푸념들이 모여 원래도 시끄러운 식당인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좁디좁은 테이블과 뜨거운 불판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는 아이 그리고 그것을 무섭게 쏘아보는 아이 엄마의 눈빛이 이어진다. 바로 주의를 주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아이의 엄마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다음과 같았다. 

어디 계속 한번 뛰어보렴 다치기 밖에 더하겠니?

아마도 주의를 통한 즉각적인 행동의 저지보다. 반어법을 통해 아이가 하고 있는 행동의 심각성을 스스로 깨닫게 할 모양인가 보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는 척은커녕 더 날뛰었다. 그러길 십여분 결국엔 넘어지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불러 세우더니 말을 이어 갔다.


어때 뛰어다니니깐 넘어져서 다치지? 계속 그렇게 할 거야?

아이는 눈물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잘못을 시인했다. 아이의 차분함이 며칠 정도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똑같은 상황이 올 때면 오늘 엄마의 말을 어기고 뛰어다니다 넘어져 다친 기억이 생각이 나서 몸서리 칠지도 모른다.


아이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한귀로는 친구의 연애에 대한 고민을 듣고 있었다. 상담을 자처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녀석은 내담자로는 최악이다. 상대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책과 인터넷으로 배운 연애 지식에 사로잡혀 상대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악질이다. 더구나 인터넷에 즐비한 이상적인 방법에 본인을 맞추다 보니 이론에 따라가질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하며 연애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 친구의 문제는 '완벽주의'에 있었다. 완벽한 상황 속에 완벽한 방법으로 완벽한 연애를 하고 싶은 탓에 조금이라도 계획이 틀어지면 불안해하고 긴장을 해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못해 데이트할 때마다 상대방으로부터 비호감을 사고 있었다.


'이 골치 아픈 친구를 어떻게 하지?'하고 고민하며 술잔을 부딪히는 순간 문득 앞선 아이와 엄마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행동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를 넌지시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실제 그 일이 벌어지자 스스로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일러주었다. 원래 무엇을 잘하려 하는 것은 어렵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도하는 건 부담이 없다. 특히 이론에 얽매여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지한 채 우선 시도하고 재차 피드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친구에게 나는 "데이트를 망치고 싶다면 이것만 기억해"라고 말하며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곧 자신의 행동과 비교한 뒤 그동안의 본인의 모습이 충격이었는지 엄지를 세우며 훨씬 머리에 각인이 잘된다고 말해주었다. 이후로는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구해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꼭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그것의 심각성을 반어로 일러준다. 보이지 않는 목표를 조준하는 것은 어렵지만 확실한 지뢰를 피해 가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나의 조언 때문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친구 A는 훗날 내 조언을 이렇게 부른다. 


네 조언 마치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악마의 속삭임 같아 악마의 멘토링이랄까?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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