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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15. 2019

이설리, 로라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

#언더더스킨 #조나단 글레이저 #스칼렛 요한슨

그녀가 벗는다와 섹시를 강조한 포스터 - 영화 <언더 더 스킨>


  영화 <언더 더 스킨>을 검색하면 관련 키워드에 그녀가 벗는다, 파격 노출, 19금, 아찔한 다리라인, 심지어는 풍만한 가슴과 가슴 축소수술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대중은  <언더 더 스킨>이라는 영화보다는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먼저 떠오르고 스칼렛 요한슨 하면 섹시 여전사가 먼저 떠올랐나 보다. 포스터마저도 주연 '스칼렛 요한슨'과 '그녀가 벗는다'로 강조해 놓았다. 이런 마케팅은 영화의 진지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화를 '음식'에 그리고 영화 보는 것을 '먹는것'에 비유한다면 맛보기 전부터 자극적인 향신료 탓에 '음식'과 '먹는행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스칼렛 요한슨의 몸매는 한국인이 보기엔 약간 살이 좀 있는 '후덕'한 체형이다. 160cm에 60kg 정도의 신체 숫자는 많은 여자들이 꿈에 그리는 키와 몸무게는 아니다. 사실 육감적인 몸매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연기는 훌륭하며 그녀의 매력 중 빠질 수 없는 한 가지를 뽑으라고 한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를 꼽을 것이다. 내 칭찬이 아니더라도 영화 <her:그녀>에서는 '사만다'라는 OS의 목소리만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음성 연기가 훌륭하다.



로라의 모습 <언더 더 스킨>


작가 : 감독 - 미하엘 파버와 조나단 글레이저

  이 영화는 미하엘 파버(미셀 페이버)라는 네덜란드 작가의 동명소설 『언더 더 스킨』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막』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소개되었다가 훗날 제목이 바뀌어 『언더 더 스킨』으로 재 출간되었다. 찰스 디킨스와 비견되는 중견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익숙하지 않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는 자주 들어봤겠지만 미하엘 파버의 작품은 좀처럼 기억에서 찾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미하엘 파버'를 검색하면 인물정보보다 언더 더 스킨의 영화 정보가 훨씬 많다.

  이 영화의 감독은 조나단 글레이저이다. 대표작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탄생, 2004년작>이라는 작품이 있다. 니콜 키드먼이나 스칼렛 요한슨은 출연할 영화에서 맡게 될 역할을 심사숙고해서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배우와 다작을 한 것은 아니나 두 배우가 말하는 영화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영화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배우의 입장에서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나 연기 인생을 통틀어 보면 조금은 생소한 역할을 도전해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시점을 조나단 글레이저는 잘 공략하는 것 같다.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영화스럽지 않은 실제 사람의 심리와 상황을 영화에 담기 위해 특이한 연출이 시도되었는데. 벤을 타고 스칼렛 요한슨이 타깃이 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부분은 실제 몰래카메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극 중 바이크를 잘 타는 스칼렛 요한슨의 동료는 고산지대의 도로에서 주행하려면 수준급의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로 바이크 선수를 배우로 섭외했다고 한다. 영화 중반부쯤엔 얼굴이 기형인 남자도 역시 분장이 아니라 실제로 기형인 사람을 배우로 섭외해 그 남자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느낀 시선과 감정까지 영화에 담고자 했다.


로라의 모습 - 영화 <언더 더 스킨>


불친절한 영화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어떻게 외계에서 온 스칼렛 요한슨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지, 여기저기 배회하며 남자들을 납치하는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것을 '불친절한 영화'라고 부르는데 '친절한 영화'는 영화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게 인물과 사건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챙겨주는 것이라면 '불친절한 영화'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보이는 것에서 관객들 스스로가 정보를 찾아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주는 영화이다. 둘의 차이점은 '친절한 영화'는 특정 이벤트를 놓치더라도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불친절한 영화'는 어떤 힌트를 놓치면 영화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물론 '불친절한 영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영화를 구분하는 내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다.



이설리, 로라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

  '불친절한 영화'가 불만이라면 미하엘 파버의 소설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영화와는 달리 좀 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설리'라는 외계인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행성은 공기와 물 그리고 식량이 부족한 황폐한 땅이 되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구로 파견되었다. 남자를 사냥하는 행동은 식량 조달을 위한 그녀의 노동이다. 여자의 몸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남자를 고르는 기준도 까다롭다. 우선 남자들은 식량이기 때문에 덩치가 큰 사람을 고르는 편이다. 남자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되어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면 자신이 추적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가족과 교류가 없는 홀로 사는 남성들을 고른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을 마취시켜 농장으로 데려온 후 한동안 사육되다가 도축되어 그녀의 행성으로 보내진다. 소설 속 이설리는 생존을 위해 살인을 하는 외계인 노동자 일 뿐이다. 고기를 섭취하기 위해 가축을 사육하고 잡아먹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이라고 생각하니 영화 속 살인의 잔인함이 덜 해지는 것 같다.



로라의 모습 - 영화 <언더 더 스킨>

  언더 더 스킨은 베니스 영화제를 거쳐 전주 영화제까지 왔었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와 소설의 차이는 베니스와 전주만큼 거리가 있다. 일반적인 바디 스내쳐의 여주인공처럼 스칼렛 요한슨 역시 아름다웠다. 또한 거울을 보고 인간 모습을 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고뇌하는 클리쉐까지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엔딩만큼은 강렬했다.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불 질러진 뒤 새하얀 눈이 덮인 들판을 뛰쳐나가는 검은 몸 그리고 불에 타며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까지… 영화를 보는 관객은 결국 그녀의 제대로 된 정체를 알지도 못한 채 그녀가 죽는 모습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 대사도 얼마 나오지 않아 인물 간의 관계를 이해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 모든 것들이 불만스러울 때쯤 조나단 글레이저의 인터뷰 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인공 이름이 로라인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건 아무도 모르죠.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공허함과 본능에 충실한 기질을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기질은 바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관객들은 외계인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거울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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