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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20. 2019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영화땡큐포스모킹 #제이슨 라이트먼 #아론 에크하트 #토론영화 #영화리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커다란 협상 테이블이다. 그리고 세상 일의 절반은 협상할 수 있다. 오히려 혼자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의 거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다른 사람과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협상이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때 그에 대한 협의를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협상이란 협상 테이블에서만 오고 가는 것뿐 아니라 테이블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들까지 협상이라 부른다. 이름은 들어보았겠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있다. 그리고 '로비스트'는 협상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협상을 하는 직업이라니 멋있어 보이면서도 어떤 직업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이런 '로비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땡큐 포 스모킹>이다.


암 환자를 설득하는 닉 네일러 - 영화 <땡큐 포 스모킹>


 닉 네일러(아론 에크하트)는 빅 타바코(담배 연구 협회) 사의 로비스트이다. 빅 타바코 사는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하루에 1200명 이상을 죽게 만드는 담배를 만들어내는 거대 회사이다. 점차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흡연을 기피하며, 금연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로비스트인 닉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졌다. 어느 날 닉은 흡연자들의 권리와 담배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청소년 흡연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 토크쇼에 나가게 된다. 10대들의 흡연을 반대하는 어머니회장, 폐질환 협회 여회장, 보건 복지부 수석 주무관(론 구디), 소년 암 환자와 등 토크쇼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존재만으로 닉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로 섭외되었다. 흡연의 피해와 심각성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썰전을 벌이는 도중 닉은 암 환자들이 죽어야 복지부 예산이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소년 암환자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보건 복지부라고 말하며 논리적인 전세를 역전시킨다. 오히려 타바코 훌륭한 기호식품을 고객이 오랫동안 사랑해주는 것을 원하며 타바코 사는 앞으로 암 예방 지원금을 조성하겠다고 말한다. 토크쇼의 말미에는 소년 암 환자와 악수를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닉 네일러의 모습  - 영화 <땡큐 포 스모킹>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닉의 신념을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도전'과 '합리적 의심'이다. 닉의 아들 조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수업시연 때도 닉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봐야 한단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해" 이미 담배가 해롭다고 부모에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어머니가 초콜릿이 몸에 안 좋다고 말하면 안 먹을 거니?"라고 되물으며 아이들마저 설득시켜 버린다.

  협상에서의 닉의 역할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생각에 합리적인 의심으로 균열을 내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은 스스로의 생각의 기초로 판단하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 이외의 사람을 설득하는 것


닉 네일러 : 넌 초콜릿을 변호하고 난 바닐라를 변호한다고 치자 

               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최고라고 한다면 넌 분명히...

조이 네일러 : 아뇨, 초콜릿이 최고예요.

닉 네일러 : 그래 하지만 그걸로는 이길 수 없어 그럼 내가 또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제일 중요하냐고 묻겠지

조이 네일러 : 최고니까요 전 다른 건 주문도 안 해요

닉 네일러 : 그럼 초콜릿만 먹을 거니?

조이 네일러 : 네, 초콜릿만 있으면 돼요

닉 네일러 : 난 단순한 초콜릿이나 바닐라 이상의 것이 필요해. 

                우리에겐 자유와 선택의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건 자유의 진정한 정의이기도 해

조이 네일러 : 요점은 그게 아니었잖아요.

닉 네일러 : 아니 바로 그게 요점이야.

조이 네일러 : 하지만 바닐라가 최고란 걸 증명 안 하셨잖아요.

닉 네일러 : 네가 틀렸단 걸 증명했으니 내가 옳았단 걸 증명한 거야.

조이 네일러 : 하지만 전 납득이 안 갔어요

닉 네일러 : 설득시켜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저들이야. 




  닉 네일러는 달변가이자 설득의 대가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과 완벽히 대립하고 있는 사람을 설득시키진 못한다. 석사나 법학 학위가 없으면서도 몸소 로비스트의 자질을 체득했다고 말하는 닉 네일러는 협상에 있어서 설득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라 아들과의 대화에서 말한다.

  완전한 설득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협상이란 어떤 것을 내어주고 어떤 것을 받아내면 그만이지만 설득의 힘은 어떤 것을 내어주지 않아도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닉은 설득에 더 재능이 있다.




논쟁의 즐거움을 아는 것


  일반적인 사람들은 논쟁을 싫어한다. 자신의 논리가 타인의 논리에 밀리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또한 괜히 논쟁을 걸었다가 자신의 지식이 탄로 날 바엔 싸우지 않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타인의 주장을 자신의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논리적 생물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기쁨이 아닌가 싶다. 땡큐 포 스모킹의 닉의 논리적인 달변을 보고 쾌감을 느꼈다면 우린 이런 원초적인 기쁨을 대입시켜 영화를 즐기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반대로 영화이기에 주인공의 삶, 환경, 처지를 이해해야 하지만 영화 <땡큐 포 스모킹>은 수용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설득할 수 있는 기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설득의 기술이 특정 이익집단, 정부 등에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다. 논쟁은 논리적일 수 있으나 받아들이는 인간은 감성의 동물이기에 순간의 말에 현혹되어 특정인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영화 제목인 '흡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다르게 흡연 권장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도덕관에 대해 이익집단과 정치집단이 최대한 대중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본인들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이런 활동은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일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알게 모르게 이런 술수가 너무나도 발달한 현재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보라!'라고 말하는 닉의 신념을 품고 주위를 둘러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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