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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28. 2019

배움엔 준비가 필요하다

#함평학교 #최진석교수 #철학 #노자 #최진석 #1교시첫수업

#만렙백수윤준혁

본 글은 새말 새몸짓을 위한 '함평학교'에서 

최진석 교수님과 함께 학습한 뒤 배운 것을 정리하기 위해 쓴 일종의 학습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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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방송 프로그램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자주 본다. 장엄한 자연경관이나 신비한 우주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듯 생소한 광야의 동물을 다뤘던 편들을 더 좋아했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다던가 한 생명이 출산하는 장면의 경우는 동물원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역시 아프리카 초원의 한 어미 기린이 출산하는 장면이었다. 갓 태어난 새끼는 축축한 털이 마르기도 전에 네 다리로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친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지만 자연에서 갓 태어난 새끼가 직립하지 못하면 어미는 건강하지 못한 개체라고 판단하고 새끼를 버려 자연도태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리가 긴 동물인 기린은 유독 네 다리가 가녀리게 보였고 부들부들 떠는 것이 더욱 힘겹게 보이는 순간이다. 영상을 보고 있는 나는 '어서 일어서!', '조금만 더 할 수 있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똑바로 일어선 새끼 기린은 안정을 찾고 곧 어미의 젖을 찾아 물었다.

  반면 인간은 태어났을 때도 태어난 이후에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먹이를 먹을 수도, 추위에 견딜 수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다. 유아기 때의 동물 본연의 재능으로만 보면 인간은 지구 상 최약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태어난 인간의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는데 무릇 이 배움이란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차원적인 배움이라고 할 수 있는 '모방'이라는 것도 타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은 유일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상호작용하에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형태를 우리는 '사회'라고 부르고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짐승에게도 '무리'라는 내부의 공동의 이익을 위한 단순한 형태의 조직은 있겠지만 인간이 말하는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와 다르게 이해관계를 넘어서 훨씬 복잡하다. 배고픈 사자는 사자의 무리를 생각할 순 있어도 먹히는 가젤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리'라고 부르는 것들의 제 이익만 좇는 행동은 짐승의 논리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사회'는 제 것과 타인의 것 모두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생각해야 배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노자는 인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도가철학의 전공자로 노자의 가르침을 받은 최진석 교수도 배움에 있어서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었다. 아마 첫 수업에서 최진석 교수의 입으로부터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인간'일 것이다. 최진석 교수는 배움에 있어서 다음의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인간으로서 완성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다른 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이루기 위한 대의는 무엇인가?라고 최교수는 물어왔다. "완성된 인간을 꿈꾸라"라고 최교수는 말한다. 30대인 내 주변만 보더라도 삶의목적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많다. 밥 굶지 않고, 결혼했고, 토끼 같은 자식이 있으니 이룰 것은 다 이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은 일생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보낼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놀 수 있는지를 궁리한다. 반대로 배고프고, 자식은 커녕 결혼도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둘 중 어떤 인생이 더 좋은 것이냐는 물음에 최진석 교수는 "목표가 낮으면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목표가 크다면 도를 향해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활자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인생이 다채로운 것이면 좋은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일찍이 생리적 욕구가 해결된 삶에 만족하는 것보다 인간으로서의 대의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둘째. 평생 가져갈 루틴을 가져야 한다.

  최진석 교수는 불교에서 득도를 하기 위해 엄격히 지켜야 할 계율을 설정하듯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꿈꾸기 위해 평생 지킬 수밖에 없는 루틴(routine)을 만들라고 말했다.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있다. 계율처럼 꼭 엄격한 루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는 것을 포함해, 차가운 물 한잔을 하는 것, 5분간 명상을 하는 등 일상생활 속 스스로에게 도움되는 것을 루틴으로 삼을 수도 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에서 작가 할 엘로드가 저술한 방법들도 인생을 바꾸기 위한 일종의 루틴이다.

  나 역시 인생이라는 것의 대의를 찾기 위해 '기록과 정리'라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다녀온 여행이나, 읽은 책, 보았던 영화, 그날의 생각 등을 글로 쓰는 작업인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해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두기 위한 도구로 선택했던 것이 글쓰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일이다.



셋째. 지식을 탐구하려는 욕구를 가져야 한다.

  화가들은 일종의 영감(靈感)에 반응해 작업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런 화가들은 둘로 나뉘는데 가만히 앉아서 영감을 기다리는 화가와 직접 그것을 찾아다니는 화가이다. 지식에 대한 욕구 없이 도를 깨우치려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영감을 기다리는 화가와 같다. 또한 생각과 지식을 함께 길러야만 완성된 인간에 가까워지는데 생각이 없이 지식만 있는 사람은 가벼운 사람이 되고, 반대로 지식이 없이 생각만 있는 사람은 고집스러운 사람이 된다. 이는 공자의 논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학문을 닦아도 생각하는 바가 없으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며,

생각만 하고 더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롭다.



  배움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함평학교에서의 첫 수업은 끝이 났다. 수업이 끝난 뒤 짧은 질의시간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최진석 교수의 삶의 방식이 궁금했던 것인지 인간 최진석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좀 더 '인간' 혹은 '주체성'에 대한  최진석 교수의 시각이나 혹은 그가 들은 노자의 원음을 훔쳐들을 궁리를 하고 있던 나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낳듯이 다음 시간이 온다면 아쉬운 마음을 눌러 담아 뼈가있는 질문을 만들어 와야겠다.



#허름한 허세




본 글은 새말 새몸짓을 위한 '함평학교'에서 최진석 교수와 함께 학습한 뒤 느낀 점을 쓴 일종의 학습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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