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여자,
인도에서 떠올린 할머니

인도, 데라둔

by 김성냥

중국에서 티벳을 거쳐 육로로 네팔에 들어온 후, 다시 육로로 인도 데라둔이란 도시와 머문 지 한 달이 넘었다. 집 떠난 지 4개월이 넘어가고 있었고. 제대로 거울 쳐다볼 일도 없다 보니 자그마한 손거울에 의지해 그럭저럭 지냈는데, 그 손바닥 절반도 안 되는 손거울 안에서 앞머리에 나기 시작한 흰머리를 발견했다. 세 개나. 에효,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늙으면 감정조절 능력이 커지고 남을 더 배려하고 욕망을 제거하고 더 어른스러워지고 그래야 하는 걸까? 난 이제서야 내 감정대로 행동하고 나에 대해 집중하고 욕망대로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늙었다는 생각, 내 뜻대로 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이 생각, 이 억압은 또 어디서 오는 건지.


4개월 전 작정하고 장기간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기 전, 내 방을 정리하며 이 방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별 돈은 없지만 통장이랑 보험 증서 같은 거, 그리고 각종 비밀번호를 정리해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전에 얼마간 여행을 떠날 때 여행자 보험을 들고 보험금 수령자를 엄마 이름으로 했다고 얘기했더니 엄마가 질색하길래, 이번엔 아예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물건을 정리할 때 찾기 쉬운 곳에 중요한 것들을 모아 둔 것이다.


뭐 달리 비장한 마음이었던 건 아니다. 사람의 앞길을 알 힘이 내게는 없으니 혹시나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다. 이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면 하루하루 현재의 시간이 더 찰지고 쫄깃해진다. 덜 억울해지기도 한다. 항상 덜 억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맛이 있다.


티벳을 여행하던 중 한 식당에서 백발의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만난 적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외국인이었지. 서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식당에선 티벳 전통춤을 공연하고 있었다. 흥겹고 역동적인 춤사위에 엉성한 박수로 응하고 있는 그들이 유쾌하기보다 안쓰럽게 느껴졌다. 빨리 숙소에 가 쉬고 싶은 듯, 힘없고 박자도 맞지 않는 헐렁한 박수소리. 그들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내 눈에는 애처로워 보였다.


어떻게 늙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늙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 큰 화두였다. 스콧 니어링처럼 가면 좋을 거 같다. 죽을 때를 알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조용히 사라지는 삶. 언제 죽을지를 대비해서 이렇게 준비하고 가면 끝까지 충만할 거 같다. 게다 평생 파트너였던 헨렌 니어링이 지켜봐 주기도 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린 채 죽어가야 하는 인지장애나, 삶에 대한 정리 없이 갑작스레 맞아야 하는 교통사고 같은 건 아니었음 좋겠다. 그리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안 됐으면 좋겠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의 안토니아처럼 생을 마감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안토니아의 삶도 아름다웠지만 임종이 정말 근사했다. 라인(line)을 완성했고 그 라인에 있는 여성들이 안토니아와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마주치며 감정을 교류했다. 안토니아의 임종. 그녀는 딸의 딸의 딸에게 생명이 몸에서 떠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모두 그 순간을 함께 한다. 딸의 딸의 딸에게 죽음이라는 신비한 경험을 안겨주는, 여성으로서 나로부터 비롯된 라인의 여성들과 함께 하다 조용히 눈을 감는 과정.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의 안토니아 임종 장면(영화 캡처).
딸과 딸의 딸과 딸의 딸의 딸. 지극히 아름답게 완성된 라인 그 자체(영화 캡처).


난 안토니아처럼 용감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가부장 체제를 살아가면서 내 몸에서 비롯된 또 다른 목숨을 이 이해 안 되는 세상에 살게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아는 나의 라인은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고 엄마가 나를 낳은 것까지다. 나는 아무도 안 낳았으니 내 라인은 이로써 끝이다.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엄마도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이니 비통하다. 나에겐 라인을 폐쇄할 일밖에 없다.


흰머리를 하나 뽑아 들여다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사랑했던 여자,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기력 없는 목소리로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기셨다. 힘 있을 때, 젊었을 때 실컷 놀라고, 몸 아프고 늙어지면 노는 것도 노는 게 아니라고. 그동안 얼마나 놀고 싶으셨을까.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존을 위협당했던 그 험난한 생, 평생 고단한 가족부양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할머니의 이 말은 나의 뇌와 가슴에 깊게 파고들었다.


흰머리 세 가닥 발견한 덕에 할머니의 말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하루다. 할머니 생각에 좀 울기도 했지만. 더 늙기 전에 할머니 몫까지 실컷 잘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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