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탕헤르
어느 곳에 가건 그곳에 사는 여성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면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이나 민주화의 정도, 삶의 질까지 대강 눈에 들어온다. 여성이나 노인, 아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행복체감 정도는 그 사회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기도 하고. 현지인 여성 친구가 생기면 여성의 교육 수준(원하면 교육을 받을 수는 있는지)이나 직업의 종류(원하면 직업을 가질 수는 있는지), 임금 수준, 평균 결혼 연령, 임신 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 음주 흡연이나 운전이 가능한지도 묻게 된다.
처음 가본 이슬람 국가, 모로코를 여행 중이었는데 나는 이슬람 종교나 문화에 많이 무지했다. 내가 아는 건 ‘페르세폴리스’, ‘아주르와 아스마르’ 같은 애니메이션 몇 개, 그리고 서구 언론의 시선으로 본 폭력, 테러, 명예살인 등, 뉴스가 알려주는 정도.
모로코에서는 여자 친구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무슬림 여성들은 낯선 나라에서 온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낯선 사람 취급이었고 눈이 마주쳐도 말없이 웃기만 할 뿐 황급히 눈길을 거두고 갈 길을 갔다. 그러니 여성의 삶에 대해서 남성에게 물을 수밖에. 모로코 남자들은 무함마드, 무스타파, 알리, 아이윱 등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본인이 무슬림임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고 이슬람 문화에 촌스러울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다.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 힌두교, 천주교 등 각각의 종교는 내게 다 그냥 종교다. 모태신앙 출신이지만, 기존의 세계가 주입시킨 종교관에서 벗어나 과정은 무거웠지만 가뿐하게 리셋되었고, 어느 종교든 허무맹랑한 얘기는 믿지 않는다. 모든 종교에 호혜평등의 원칙으로 대하고 내게 믿음을 강요하지만 않으면 어느 가르침이건 존중한다.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만 여성이 머리카락을 꽁꽁 감춰야 하는 문화가 궁금했다. 모로코 탕헤르에서 만난 여러 무함마드 중 한 무함마드와 히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들은 얘기로는,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 매력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적일 수도 있는 매력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집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에게만 보여주면 된다, 그러므로 불특정 남자 다수와 마주치게 되는 밖에서는 머리카락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좋다, 는 것이다.
그렇다 치지 뭐. 그런데 히잡이 쓰기 싫은 여성들은 안 쓰는 걸 선택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선택 가능할 뿐 아니라 요새는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히잡을 고수하는 여성도 본인이 원해서 그런다는 것. 실제 모로코 탕헤르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다니는 여성들이 드물긴 해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부르카처럼 눈에 망사를 대고 온 몸을 가린 엄격한 베일을 한 여성은 거의 못 봤다. 마라케시 기차역에선 검은색 히잡과 옷으로 몸은 가린 채, 카페에서 실내 흡연을 즐기는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여성이 스스로 원해서 히잡을 쓴다는 건 너무 뻔한 얘기 같았다. 사회의 전통과 문화로 강요되어 왔다면 히잡을 벗어버리는 행동 자체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사회나 가정에서 주입된 질서가 내면화되면, 본인이 그걸 진짜 원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기 어렵다. 게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어 감춰야 한다면, 그걸 벗어버릴 때 여성은 이미 ‘쉬운 여자’라는 낙인찍힘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내 의심을 들은 무함마드가, 그러면 여성들에게 직접 물어보잖다. 쳇, 물어봐야 뻔하겠지. 누가 외국인 앞에서 히잡이 싫은데 억지로 쓴다고 하겠어? 게다 나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아랍어로 얘기할 거면서. 지나가던 여성들은 역시 친절하게 무함마드에게 대답해주었다. 응, 나 히잡 내가 원해서 쓴 거야.
억압이 깊이 내면화되면 자기도 모르게 강한 권위에 따르는 건 당연하기도 하고, 또 이런 태도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포함한 모든 여자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는 걸 보고 자라고, 아버지의 권위가 정숙한 딸이 되도록 유도했을 테고, 사회의 문화가 히잡을 정숙한 여성의 의무로 본다면, 한 여성이 스스로 히잡을 원하는지 아닌지 묻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 무함마드는 자신들의 문화를 흠집 내려는 까칠한 외국인의 불순한 의도로 내 생각을 받아들였다. 이쯤 되면 대화 포기.
머리카락을 감추어야 하는 이유도 이해불가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보고 유혹을 느낀다면 그건 남성의 욕망 탓이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탓이 아니다. 남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또한 사회에는 남성들의 욕망을 해결해주는 장치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법이겠지만 대도시들에선 성매매도 할 수 있고. 긴 밤 짧은 밤을 구분해 가격 매기는 것도 세계 공통인 듯하고. 자기 내부에서 생긴 욕망에 대해 대상 탓을 하는 건 참으로 비겁하다.
여성을 요망한 것으로 판단하는 모든 종교적 논리는 비슷하다. 특히 종교적 수련 중에 남성 수련자를 유혹하고 괴롭히려 등장하는 요괴는 항상 여성의 모습이다. 남성의 욕정이 그리 강하므로, 그래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면 남성이 성직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녀님이나 비구니 스님의 단정한 모습에서 종교적 경건함을 찾기 훨씬 쉽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부르카 논란에서는 다른 논점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은 국가다. 프랑스의 예전 식민지였던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건너온 이슬람 인구가 전체 인구 중 10%에 달한다고 한다. 프랑스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공화국 이념으로 삼고 있고, 이에 따라 2011년 부르카 금지법을 제정했다. 공공장소에서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이나 눈 부위까지 망사로 덮어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착용이 금지되고 있다.
단순히 머리카락 가리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얼굴 전체를 가리면 처벌 대상이 되는데, 치안과 보안 문제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저항하는 흐름도 만만치 않다. 소위 ‘부르카를 허하라’고 주장하는 여성 이슬람 집단인데, 이들은 프랑스의 부르카 금지법이 부르카를 착용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슬람에 대한 오만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데도 착용할 자유가 있는 건가. 이 이상한 논리로 부르카 착용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상황이 이 정도 되고 보니 아시아 여자인 내 눈에는 이 싸움이 산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부르카 문제는 권력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코란을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해 여성 억압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이 생긴다면 통제를 강요하는 사람과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은 이슬람 국가도 아닌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공화국 이념인 세속주의와 억압을 내면화한 이슬람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로써 정작 문제의 당사자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쏙 빠져 버렸다. 억압받는 게 체질이 되어 그것을 문화로 흡수한 여성들이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으니 권력자 입장에선 절로 콧노래가 나올 듯.
부르카도 문화이니 이슬람의 문화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문화 상대성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란의 여성들은 1936년 샤(왕)의 명령에 따라 베일을 벗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자유로운 복장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은 구글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거치면서 83년에 다시 정부의 명령으로 베일을 써야 했다. 또 1993년 1월에는 광고 사진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이렇게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건 문화가 아니다.
이란 권력자들은 여성의 미소가 악마의 욕정을 불러일으킨다며, 여성의 성적 매력이 공동체의 선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권력자만의 공동체, 자기들이 규정한 선이다. 게다가 자기 안에서 솟구치는 욕정도 남 탓이니 욕망의 발현마저 참 비주체적이다. 또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여성의 정절을 베일로 둘러 보존하는 것이 이슬람 세계 인권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해왔다. 정절이 인권과 무슨 관련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실 평범한 남자들은 별 생각도 없는데 몇몇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여성의 몸에 대한 어떤 강력한 터부나, 혹은 그 반대로 여성의 머리카락이나 미소 짓는 입술에 참을 수 없는 강력한 페티시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아님 어떤 여성에게 홀딱 반한 권력자가 무슨 사연인지 그 여자를 소유하지 못해 엄청 삐친 상태이거나. 그러나 누구 맘대로 욕정 운운하며 상대 성에 대해 얼굴을 가려라 말라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문화와 종교와 인권의 이름으로.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문화에 각기 차이가 있을 테고 서로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베일이 패션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자유다. 핵심은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해서 논란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된 욕망을 직시하는 일이다. 정숙한 여자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욕망을 대리해 스스로 히잡을 쓴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녀가 정말 원한다면 누구도 감히 그녀의 머리에서 베일을 벗겨낼 수 없을 것이다. 머리나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고, 패션으로서 스카프 정도는 얼마든지 두를 수도 있는 일이고. 다만 이슬람이든 비이슬람이든 인간이 희망하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날이 더우면 베일을 벗고 싶을 테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면 얼굴에 그 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을 뺨에 느껴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뜨거운 태양도 사막의 모래바람도 없는 도시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히잡이나 부르카를 쓸 필요는 없다. 내가 쓰고 싶으면 쓰고, 벗고 싶으면 벗으면 된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 벗었다가 남성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 가려져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물리적 기반일 뿐이다. 몸을 가리든 말든, 가부장제와 종교를 통해 억압을 강요하는 권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각한 그녀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선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억압이 아닐 테고 계몽된 의식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녀들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이로써 무함마드와 말싸움으로 시작된 내 생각 정리 끝.
마라케시 자마 엘프나 광장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 저 여자들도 시원한 바람 한 조각을 드러난 얼굴 그대로 맞으며,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흐름을 느끼고 싶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