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산티아고 데 쿠바
산티아고 데 쿠바, 세스페데스 공원 근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바라코아로 갈 버스 일정과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에 대해 묻고 지도를 받아 나오는 길에, 한 무리의 할머니 혁명가들과 마주쳤다. 꼬뮤니스트 연맹이라 쓰인 배지를 달고 있었고,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관련 책자와 리플릿 등을 들고 계셨는데, 할머니 스피릿과 운명적으로 깊은 교류가 가능하다고 믿는 나는 그냥 직진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올라~ 꼬모 에스딴(안녕하세요?), 해놓고 방긋 한 번 웃었다. 배지를 가리키며 무슨 조직인지, 할머니들 예전에 한 가닥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묻고 싶었다. 오르가니사시옹 블라블라 레볼라시옹 어버버하고 있으니 할머니 혁명가들은 얘 뭐래니, 라며 자기들끼리 막 웃으셨다. 쩝. 다행히 길 가던 다른 할머니가 뭔 상황인가 궁금하셨나 오셔서 아쉽게나마 통역을 해주신다. 쿠바 사람들은 정말 참견쟁이, 간섭쟁이, 충고쟁이, 수다쟁이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혁명에 헌신했던 분들이고, 오늘 모임이 있어 만났다가 집에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궁금한 거야 많지만 말이 안 통하니 섭섭한 마음에 잘 가시라고 인사한 후 돌아섰다. 그런데 이번엔 스페인어를 통역해 알려주시던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며 뭐하는 사람인지 묻는다. 할머니 영어는 그리 능숙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만했다. 난 여행자고 남한에서 왔으며 쿠바에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자기 집에서 차 한 잔 하고 가라 하신다. 음... 그럴까. 위험 감지 촉수 발동. 1년 가까이 여행하는 동안 할머니 사기꾼은 만난 적이 없다. 할머니들은 더럽지도 위험하지도 않았고 성추행 같은 것도 안 했으며, 솔직하고 친절했다.
할머니를 따라 할머니네로 갔다. 금방이라더니 대성당이 있는 광장에서 족히 20분은 걸어갔다. 땀 뻘뻘 나는데, 할머니를 따라가면서 ‘아직도 멀었어요?’, ‘아니, 거의 다 왔어’를 반복하며 걸었다. 쿠바 사람들의 ‘거의 다 왔어’도 구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국인의 급한 성정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네 도착하기 전에 할머니 동생네도 들러서 잠깐 인사도 했다. 아휴...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또 읊어대는 하등 소용없는 아쉬움. 드디어 도착한 할머니네는 집도 가구도 낡고 어두컴컴했으나, 꽃과 나무들이 잘 관리된 작은 정원이나 예쁜 자수로 된 테이블 장식 등은 안온함을 느끼게 했다.
집에 들어와 자리에 앉고 나니 할머니가 정체불명의 차를 가져다주신다. 너무 오래된 도자기 찻잔 역시 많이 낡았고 이가 빠졌고 변색되었다. 할머니네서 가장 놀라웠던 물건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온 선풍기. 할머니는 이 선풍기가 42년 된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태어나던 해 장만한 것이어서 기억하신다고. 손만 대도 바스러질 것 같은데 버튼을 누른 후 팬이 돌아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조금씩 돌아가면서 작동하긴 했다.
그래도 번역기 도움도 받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추측해 단어를 미리 짚어가면서 대화한다. 할머니 이름은 마마 페로 쎄구라. 78세, 아프리칸 스페니시, 라신다. 마흔이 넘은 아들이 하나 있고, 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을 강의했고, 지금은 정부에서 내 준 이 집에서 혼자 사신다고. 아주 가끔 아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주말이면 만나는 아시아인 친구들 얘기도 해주신다. 이름을 들어보니 중국인이다. 할머니는 아시아 그 멀리서 여기까지 여행 온 여자가 신기했나 보다. 나의 여행에 대해 주로 물으신다. 그러다 할머니의 인생이 들어 있는 사진집을 들고 나와 보여주신다. 사진집에 코를 박고 오랫동안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한 명의 젊고 건강하고 지적인 여성의 모습이 거기 있다.
할머니 가족들의 추억과 메모. 나도 간직하고 싶다고 해서 사진 찍기를 허락받았다. 할머니 젊을 적 사진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매력적이었다. 야속한 인간의 숙명이라니, 이 젊고 윤기 나는 피부와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람을 이리 바꾸어 놓다니. 이런 찬란하고 눈부신 시절을 간직하고 늙어야 하다니.
이미 나이 들고 노인이 된 여성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할머니 머릿속에 자신의 인생은 연속선 상에서 이해되겠지만, 내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리 다른 이 둘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이제 70이 넘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는 것처럼 놀라면서도 어색한 기분.
오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 오래전 시간과 현재를 한 번에 잇는 일이 낯설고 약간 두렵기도 하다. 우아하게 늙을 수는 있지만(특히 돈과 여유가 많다면 더더욱) 나이 듦은 아무리 정신승리한다 해도 아쉽고 서글프다.
노인에게는 그 단계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나, 우리는 아직 동의된 그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돈과 성형수술로 만든 노인의 얼굴은 불편하다. 아름다움은 온통 젊고 싱싱한 몸과, 몸의 재생산이 가능한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 농경사회에서나 의미 있었을 노인의 지혜는 그저 고리타분하고 귀찮은 잔소리일 뿐이고. 상품가치가 없는 노인의 몸은 연금이나 축내는 잉여로 전락하고, 일하는 노인은 젊은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다.
쿠바는 다르긴 한 것 같다. 쿠바는 대표적인 100세인(Centenarian)의 나라다. 쿠바의 의료제도 중 예방의학과 신약 개발은 주목해볼 만하다. 설탕이 주요 생산품인 쿠바는 사탕수수 왁스에서 혈관건강에 좋은 ‘폴리코사놀’이란 성분을 추출해 천연의약품을 만들어 노인들에게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한국에도 공식 수입되어 팔리고 있는데 가격은 꽤 비싼 편이다. 쿠바 노인들은 공짜로 먹는다는데.
살기 행복하지 않다면 오래 사는 것도 지옥일 텐데, 내가 만난 쿠바 할아버지들은 주책이다 싶게 신나 보였다. 할머니들은 덜 주책이었고. 한국의 노인빈곤율이나 노인 자살률의 증가 같은 우울한 소식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름답고 우아하기는커녕, 가난하고 죽고 싶은 게 한국 노인들의 현실이라는 건가.
여행하는 동안 몸이 늙어가는 것, 혼자 사는 것, 홀로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으나, 아직 덜 늙고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죽음 역시 아직 오지 않았으니, 생각들은 그저 말랑말랑하게 머릿속에 있다가 흩어져버린다. 어차피 모든 인간이 겪을 일이고, 나 역시 그 과정을 통과해 천국을 가든 먼지로 돌아가든 완전한 무의 상태가 되든 하겠지. 너무 가난하지 않고 아주 죽고 싶은 상태는 아니었음 좋겠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오셨다. 책 안에 메시지를 한 자 한 자 눌러쓰시더니 내게 선물로 준다고 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혼용해 써주셨는데, 정확하지 않은 필기체여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 표정으로 무슨 얘기일지 이해했다.
선물로 주신 영어로 된 책. 스페인어 책은 줘도 못 읽을 테니 날 배려해주신 거겠지만 책은 너무 낡았고 두꺼웠다.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얼룩이 심해 안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쿠바에선 별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책을 받고 인사하고 떠나려니 비가 내린다. 할머니가 정원에서 이파리 넓은 나뭇잎을 따서 우산으로 쓰라고 내주신다. 이웃집 토토로라도 만난 듯한 즐거움. 할머니는 7월이면 큰 축제가 있다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안 보일 때까지 집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