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지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책 표지에 있는 세 줄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마세요."
"이 이상 어떻게 더해?"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
평균 나이 72세의 이 시대 어른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말에서 인생의 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을 들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일말의 힌트는 찾을 수 있었다.
1. 나이 듦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노년이 힘든 것일 뿐
사람들은 100세 시대를 말하며 돈을 이야기한다. "매월의 생활비는 얼마가 드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모은 돈은 얼마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더 준비를 하세요"라며 여러 광고에서 떠든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노년의 꺼리다. 즉, 일할 꺼리와 즐길 꺼리 말이다.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은 노년의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행복은 일에 있어요. 일해야 행복해요. 일을 안 하면 봉사라도 해야 해. 사람은 무용지물로 살면 자기 가치를 잃기 쉬워요. 나이 들어도 생산적인 일을 안 하면 죽기만 기다리게 된다니까."
우리는 흔히들 은퇴를 해서 일에서 손을 놓아야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텃밭을 가꾸는 전원생활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다니는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노는 재미는 줄 수 있어도 그것이 삶의 존재 의미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거리 즉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은퇴하면 바로 눈 앞에 나타날까? 책에 언급된 사람들의 직업을 유심히 보았다. 배우, 변호사, 디자이너, 철학자, 시인, 화가, 요리 블로거 등 직업은 정말 다양했지만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 직원으로서의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에 집중하여 독립적으로 나만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리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2. 진정한 어른은 예의를 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교양이 드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시간이 만들어 주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반성과 끊임없는 노력, 그것들이 뒷받침되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노력은 생각하지 않은 채 단순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대접받기를 원하면 우리가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노년이 되어 버림받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하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나머지 하나는 사소한 것이라도 존경받을만한 점이 있어야 해요. - 철학자 김형석
어른이라고 행세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염치를 가지고 지킬 걸 지키면 어른으로 대접받는 거죠 - 배우 이순재
3. 몸이 늙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늙는다.
만약 나이 들어서 총기가 떨어졌다면 필시 사고가 편협해졌기 때문입니다. 습관에 매달려 살기 때문이죠. - 노인 의학자 마크 E. 윌리엄스
몸이 나이가 드니 생각도 자연스레 늙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의 노화는 변화를 거부할 때 일어난다. 어제 살던 대로 오늘을 살고, 오늘 살던 대로 내일을 살면 삶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뇌가 움직여야 할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과거를 백미러처럼 계속 돌아보며 앞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생각의 노화 아닐까?
낯선 환경에 던져지는 것,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위해 다른 것을 시도해 보는 것 그것이 생각의 노화를 막는 길이 아닐까?
난 출근을 할 때마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보기도 하고, 한 정거장 다음에 내려 보기도 한다. 이쪽 골목으로 출근했다면 한 골목 더 돌아서 출근하기도 한다. 약속을 잡아야 한다면 늘 가던 식당보다는 새로운 식당을 시도를 해 본다.
변화가 몸에 썩 달가운 것은 아니다. 가다가 길이 막혀서 출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고, 새로운 식당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가 음식에 실망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제와 다른 삶을 살다 보니 앎이 깊어지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노인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변화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결정한다.
4. 투입 없는 산출 없다.
적게 먹으면 작은 똥 싸고 많이 먹으면 굵은 똥 싼다. - 재독화가 노은님
화가의 다른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 내 마음에 이 문장이 가장 와 닿았다. 가끔은 졸작이라는 느껴지는 글과 그림을 열심히 브런치에 싸지른다. 그런데 그런 졸작마저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책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여행이 되었든 내 삶에 어떤 형식이든 경험을 열심히 넣을 때 그것이 내 몸에서 소화 과정을 거쳐 글이나 그림을 통해 내 몸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느낀다. 즉 투입량이 많아져야 나오는 것도 많아지는 것이다.
5. 꾸준함은 실력의 기본이다.
강미정 시인이란 분이 그러대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 10년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요. 세상의 모든 큰일이 자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 요리 블로거 정성기
치매에 걸린 노인을 수발하며 요리를 올리는 블로거. 60대의 노인이 90세의 노인을 돌보며 10년이 넘도록 요리를 계속 블로그에 올렸다. 하루 이틀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1년을 지나 5년을 지나 10년이 넘도록 계속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능력에 기본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꾸준함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력을 믿고 꾸준히 도전하는 그것이야말로 어떤 분야가 되었든 실력을 기르는 기본기가 아닐까?
6. 성공의 절반은 사람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동물은 기껏해야 제로섬 게임을 하지만, 곤충과 식물처럼 공생하는 생물은 서로를 도와서 한계를 뛰어넘어요. 손을 잡아야 살 수 있어요. - 동물학자 최재천
나의 운은 항상 남의 운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을 지니면 예외 없이 좋은 운이 들어옵니다. - 일본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사업에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때를 잘 만난 것도 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의 사업을 잘 끌어주거나 좋은 사업 파트너를 만나거나 훌륭한 직원을 만나서 그 사업이 잘 된다고 들었다. 사람의 인연이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끝이 날지 모르지만 좋은 인간관계가 성공의 밑바탕이었다.
7. 자유를 얻고 싶다면 재미를 선택하되, 돈을 얻고 싶다면 싫증을 감내하자.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치를 좀 부려야겠다. 예순한 살부터 내가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하고만 일해야겠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확실히 돈은 안 돼. 싫어하는 일도 해야 되는 거지 - 배우 윤여정
돈도 벌고 재미도 있는 그런 일은 아직 찾지 못했다. 돈이 개입하는 순간 재미는 반감된다. 그러니 자기의 진정한 흥미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남겨 놓자.
8. 스스로의 부족함을 안다는 것
인생에선 잃는 것과 얻는 것이 공평해요. 그리고 살다 보면 알게 돼. 인간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자기 생긴 모양만큼 살게 된다는 걸 말이지요. - 디자이너 노라노
나를 안다는 건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것이죠.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거죠. -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살다 보니 주제 파악이 가장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한다. 자신이 100% 옳은 것이 아닌데 자꾸만 내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9. 내려놓기의 어려움
인간은 사실 매일을 극복하는 게 힘들어요. 젊었을 때는 앞날을 바라보고 가죠. 40세, 50세가 지나면서 점점 앞날이 아니라 오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다음엔 순간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죠. 60세가 되면 그런 생각조차 안 해요. 70세엔 이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야겠다는 욕심이나 부담이 없어져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20살의 “다음에 보자”는 50년의 여유 기간이 있지만 70살의 “다음에 보자”는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건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아닐까?
10. 진정한 사랑의 의미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 - 기업가이자 목회자 하형록
사랑의 방향은 나에서 남이 아니라 남에서 나다.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음식을 대접했지만 그 사람에게는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닌 저주가 된다. 선한 의도가 꼭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