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독후기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이다.
오히려 소설이라기보다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보고서 같은 느낌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결혼 초반 아내와 많은 다툼을 했던 나의 모습이 더 떠올랐다.
내용이 잊히기 전에 다시 한번 적어본다.
p.136
"내가 많이 도와줄게.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이고, 내복도 삶고 그럴게."
p.144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도울께"라는 그 한 마디에는 무수히 많은 뜻이 들어 있었다.
'집안일은 너의 몫이야. 하지만 직장에 다녀온 내가 힘들지만 도와볼게.'
"내가 도울께"라는 말은 아내에게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뜻을 몰랐다.
'도와준다고 하는데 왜 화를 내지?'라는 나의 생각이 부부싸움의 단초가 되었다.
p.135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차라리 정대현 씨의 반응은 나았다. 둘째가 생겼을 무렵 나는 20대였다. 20대의 나는 아내가 "나 둘째 생겼어"라는 말에 "어. 그래"라는 단 두 마디의 말을 했다. 아내와 나 사이에는 10분간 알 수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애는 혼자 났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꾹 참았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는 아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p.165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게다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출입국 신고서에 직업란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나는 회사원, 아이들은 학생으로 적었다. 아내는 전업 주부라고 적어야 하냐고 물었다. 아내의 그 물음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기 만의 명확한 일이 있지만 어쩐지 자신은 직업이라고 부르기 무안한 그런 느낌 말이다.
p.117
"내 딸이 요 앞 대학에 다니거든.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 집에 간다고 무서우니까 데리러 오라네. 미안한데 나는 먼저 갈 테니까. 김지영 씨. 이거 다 마셔야 된다!"
나와 남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사람들. 나의 어머니, 누이, 딸이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 한 마디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머니는 내게 그러셨다.
'시집살이가 너무 싫어서 딸을 지웠다고.'
그래서 우리 집에는 나와 남동생 남자만 둘이었다.
어느덧 어머니가 살아온 시절에서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여자에게 살아가기 녹록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10년생 딸을 둔 아빠가 되고 보니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