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부른 추억
아빠의 김치볶음밥
주말 저녁 속이 불편한 아내를 대신해 주방에 섰다.
밥통을 열었는데 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걸로 식구들이 밥을 먹기에는 어렵겠는데.
부족한 밥 양을 감안해 김치볶음밥을 해보기로 했다.
남은 찬밥이라야 고작 한 공기김치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어 썰기 시작했다.
김치의 향에서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가 썰어주셨던 김치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김치는 제때 먹어야 한다며 늘 끼니때마다 김치통에서 새로운 김치를 꺼내셨다.
식사 후 먹고 남은 김치는 다른 통에 모아서 김치 볶음을 만들어주곤 하셨다.
그 시절 김치를 자주 먹었지만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맛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부모가 당연히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그저 내가 맛있게 먹는 것 만으로 만족해하셨다.
내가 부모가 된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어머니는 김치를 썰 때 도마에 물을 적셔서 김치를 썰으셨다.
나무 도마에 김치 국물이 배지 않게 하려면 물을 살짝 발라 놓으면 덜 묻는다고 하셨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나도 역시 김치를 썰기 전 도마에 약간의 물을 바르고 잘랐다.
또한 어머니는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김치를 잡고 자르셨다.
어머니의 손 맛을 기억하기에 손에 빨간 물이 들고 시큼한 김치 냄새가 손에 배지만
내손으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어 자른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의 향긋함이 어릴 적 내가 먹었던 김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김치양이 너무 적은 것 아닐까?큰 아이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만 김치 냄새가 싫다며 생김치는 아예 입에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나마 김치전이나 김치 볶음은 먹기에 이렇게라도 먹는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김치볶음밥에서 아예 김치를 골라내지 못하게 할 생각으로 아주 조각조각 잘랐다.
이렇게 하면 골라내지는 못하겠지?
몸에 좋은 김치이지만 아들에게는 그저 냄새나는 음식이겠지.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옛날 음식이 그리워지면 나처럼 김치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국물을 덜어낸 참치캔김치만 넣고 볶기에는 허전해서 참치캔 한 통을 꺼낸다.
수은도 들어 있고 자주 먹으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에 참치캔을 딴다.
나름대로 국물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참치를 볶기 시작했다.
아뿔싸 참치 사이사이에 국물이 많이 남아 있었나 보다.
참치 덩어리가 참치인지 개구리인지 모를 정도로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온다.
얼른 냄비 뚜껑으로 프라이팬을 덮어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프라이팬 주위에 참치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아내가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것 이기에 오늘 설거지는 필히 내가 해야겠다.
김치+참치맛있는 볶음밥 레시피를 찾아보고 이리저리 연구도 해보았는데 참치가 튀는 바람에 망쳤다.
레시피 순서와는 달리 그냥 대충 김치 넣고 마늘과 파를 넣고 순식간에 마무리를 했다.
인생이 늘 내 뜻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다.
매뉴얼은 그저 참고용일 뿐 돌발 변수에 대응을 잘해야 고수가 되겠구나 싶다.
완성 전 볶음밥얼렁뚱땅 김치 참치 볶음밥을 만들었다.
마무리를 하고 마저 계란까지 올려야 하지만 체중이 적지 않은 두 남매를 고려해 생략했다.
볶음밥에 계란 빠졌다고 안 드실 분들이 아니다.
식탁에 오른 볶음밥"아빠 최고"라며 김치볶음밥을 먹는 아이들.
아마도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내 배가 더 고프니 나는 아직 좋은 부모가 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주신 어머니 그리고 멀리까지 보내주신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리며 저녁을 먹다.
다만 나도 예전에 밥을 먹으며 어머니께 "맛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후회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