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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l 30. 2019

옷을 입고 샤워를 하다

비 오는 날의 산책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닥을 보니 물에 젖어 있다.
운동을 하러 나가며 우산을 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맨몸으로 집 밖을 나선다.

이슬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진다
전조가 좋지 않다
이내 이슬비는 굵은 빗방울로 변하더니
이젠 아예 장대비가 쏟아진다.

산책로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토끼굴에 갑자기 호랑이라도 나타난 듯
사람들은 재빨리 처마 밑,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해 숨는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걷는다.
깊게 눌러쓴
모자챙이 자꾸만 침을 흘린다.
모자 위로 떨어진 물방울들이 모여
모자챙에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비를 맞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빗방울이 무슨 독극물도 아닐진대
비가 오면 반드시 우산을 써야 하고
비는 꼭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복장은
비에 다 젖어도 이상이 없는 것들이었다.
주머니 안에 든 스마트폰이
약간 걱정되지만
비가 옷을 뚫고 스마트폰으로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장대비에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고 걸으니
욕실에서 옷을 입은 채 샤워를 하고 있는 듯하다.

맞은편에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를 맞고 오는 이를 보니 반갑다.
외로운 빗길에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 같지 않아서 안도가 된다.

평소 같으면 물웅덩이를 피해서 다닐 것인데
아예 젖어버리니 굳이 이런저런 신경 쓰지 않고
물이 튀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걷게 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한다는 관습적 행동에서 벗어나니 다른 생각들이 일어난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또 하나 얻다.
현상에 대한 반응을 달리할 때 결과가 달라진다.
똑같은 현상에 똑같은 반응을 하며 삶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새로운 삶을 바란다면 새로운 것을 꾸준히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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