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앤 라모트
p.184
“당신의 브로콜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요. 그러면 브로콜리가 당신에게 자기를 어떻게 먹으면 되는 지를 알려줄 거예요”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브로콜리와 대화를 한다고? 그건 미친 사람이야!
하지만 저자 앤 라모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분명 어린 시절엔 직관을 통해 브로콜리와 대화를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그걸 잃어버렸다.”
마음을 가다듬고 브로콜리를 쳐다본다. 정확하게는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어른이 되고 난 이후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잠시 이성의 판단은 접어두고 브로콜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어본다.
나와 마주한지도 20년이 넘어가는군요. 어머니는 당신에게 나를 살짝 끓여 내어 주셨죠. 생으로 먹어도 그만인 브로콜리인데 어머니는 풋내를 없애기 위해서였는지 끓는 물에 잠시 몸을 담그게 했어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끓는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의 작은 잎들이 떨어져 나가고 녹색의 색소들이 끓는 물에 은은한 녹색 빛의 흔적을 남겼죠.
당신에게는 손가락만 한 내 모습이 전부라 생각했겠지만 사실 나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커요. 시장의 손길과 어머니의 손길이 지나고 나서 당신의 입 속에 들어갈 만큼 작아졌을 뿐이죠.
그렇게 작아지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줄기들은 필요 없다고 버려졌어요. 내가 크는 동안 나를 튼튼히 받쳐주던 기둥이었는데 그저 질기다는 이유로 사라져 버렸어요. 아마도 내가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었다면 줄기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겠죠.
그런 희생의 시간과 함께 나는 접시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져 식탁 위로 향했어요. 당신의 어머니는 자식이 씁쓸해서 안 먹을까 봐 내 옆에 빨간색이 가득 담긴 종지 하나를 놓으시네요. 고추장에 약간의 양념을 얹어 만든 특별한 소스예요.
하지만 당신은 어머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애써 나를 무시하는군요. 씁쓸한 맛 때문인가요? 아니면 부스스한 나의 머리카락 때문인가요?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서 내 머리에 빨간색을 문질러 그대의 입 앞에 등장시켜 주시지요. 당신의 양 눈썹 사이에 긴 계곡이 생기며 마지못해 먹지요.
어떤가요? 그렇게 못 먹을 맛인가요? 그대가 상추를 사랑하듯 부디 나도 사랑해 주세요. 언젠가 그대의 다정한 브로콜리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