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을 수집합니다.
홍콩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편의점 카운터 앞에 섰다. 1000달러 홍콩 지폐를 내밀며 "500달러 충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직원이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대는 동안, 문득 그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Fat'
순간 그렇게 읽혔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읽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보니 'Mr. Tat'이었다. 그의 불룩 튀어나온 배가 먼저 시야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연상했던 것 같다. 타인의 외모로 이름을 판단한 스스로에게 씁쓸한 웃음이 났다.
Mr. Tat의 머리카락은 정돈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이 얼굴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있었고, 안에 입은 검은 티셔츠 위로 걸친 작업복은 여러 날 빨지 않은 듯 얼룩져 있었다.
"500달러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거스름돈을 건네는 그의 손이 보였다. 손톱 밑은 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고, 손등도 깨끗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나는 순간 주저했다. 어떻게 받아야 하나. 결국 재빨리, 거의 낚아채듯이 돈을 받아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배우고 또 다른 이들에게 말해왔으면서도, 막상 나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인간인지라 시각적 정보에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정당화가 될까?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생각이 계속됐다. 물론 최소한의 청결과 복장은 필요하다. 특히 음식이나 돈을 다루는 업종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도 일종의 에티켓이니까.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아는가? 어쩌면 그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빈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어두운 터널 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사이로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집에 와서 노트를 펼쳤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글의 소재는 대부분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 경험한 순간들에서 나온다. 오늘 만난 그 편의점 직원도 언젠가 내 글 어딘가에 'Mr. Fat'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망설였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쓴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작가는 관찰자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 말투, 습관, 외모까지 모두 모아둔다. 언젠가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해.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페이지는 여전히 비어 있다.
문득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어떨까? 타인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지난주, 점심시간에 김치찌개를 먹다가 김치국물이 하얀 와이셔츠 가슴팍에 튀었다. 빨간 얼룩이 선명했지만, 회의 시간이 임박해 그대로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후 내내 몇 명이나 그 얼룩을 봤을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는 봤을 것이다.
더 떠올려보니 잊고 싶었던 기억이 하나 더 있다. 몇 년 전 지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빈소에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했다. 육개장이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는데, 국물이 입술 주변에 가득 묻었던 모양이다. 그걸 모른 채 다른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일어서는 자리에서 동료가 건네준 휴지 덕분에 알았다. 입술 주변이 빨갛게 얼룩져 있었다. 그 엄숙한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봤을까?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때 나를 본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저 사람 참 지저분하네', '장례식장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문상을 하러 온 건지 음식을 먹으러 온 건지.' 주위 사람들은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타인을 판단하는 만큼, 나 역시 판단받고 있었다. 머리가 조금 헝클어진 날, 옷에 얼룩이 묻은 날, 입술에 가득 음식을 묻힌 날, 누군가의 눈에 나도 불쾌한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 Mr. Fat에 대한 글은 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렇게 다르게 쓰기로 했다. 편의점 직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 모두가 가진 편견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의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은 불완전하다. 나도, 그 직원도, 장례식장에서 나를 마주쳤던 사람들도, 지하철에서 스쳐 간 모든 사람도, 이 글을 읽는 누구도. 그 불완전함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