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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01. 2020

얼렁뚱땅 자비면

메뉴 결정 부탁드려요. 가족 여러분

  주말 점심 무엇을 먹을까 메뉴 고민을 하다가 면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평소에 먹던 라면 대신 집에 남아 있는 면을 삶아 먹을 생각이었다. 면을 찾아보니 자장면으로 쓸만한 면이 3인분, 소면이 2인분 정도 남아 있었다. 4명인 우리 식구에게 어느 한쪽으로 몰기에도 애매한 양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취향을 물어봐서 두 사람은 자장면, 두 사람은 비빔면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딸에게 수요조사를 시켰다. 그랬더니 아내는 내가 먹는 것을 먹겠다고 하고 아들은 무조건 '곱빼기'란다. 아들은 두 그릇은 먹을 수 있다며 자장면 한 그릇, 비빔면 한 그릇을 달라는 뜻이었다. 딸은 어이없는 수요조사 결과를 알려주며 본인도 아무거나 먹겠단다.


  이런 줏대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면을 삶느라 열기로 달아오른 부엌에서 나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결정을 못하면 그냥 내 마음대로 할게!" 딸은 아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영문도 모른 채 부엌 밖으로 쫓기듯 나갔다.


  아내가 이미 만들어 놓은 자장소스를 살짝 볶아서 살짝 익은 도삭면을 넣었다. 내가 아는 자장면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대충 자장면의 느낌은 난다.

  도삭면을 끓인 물이 식기 전에 소면을 삶아 꺼내어 시판 비빔장 소스를 넣어 비빔면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뉴를 반반씩 그릇에 담았다. 자장면 반 그릇, 비빔면 반 그릇

  식탁에 앉은 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나 아내는 짜장 짬뽕면도 아닌 이상한 모양에 젓가락을 들어야 하나 주저하는 눈치다. 대체 이 정체불명의 메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자비면이야. 자장면 + 비빔면" 그렇게 얼렁뚱땅 자비면이 만들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딸은 아빠가 자장면, 비빔면을 다 먹을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서 자비면이란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식구들은 모두 깔깔거리며 자비면 한 그릇씩을 뚝딱해치웠다. 하지만 점심을 다 먹기도 전에 저녁 메뉴 고민이 든다. 저녁에는 뭐 먹지? 주말에는 메뉴 고민하다가 시간이 다 가는듯하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러 다시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주말 요리사 아빠의 고민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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