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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Dec 30. 2019

어둠의 목소리와 함께한 파스타

허기와 감질맛

  야채를 너무 싫어하는 아이들을 생각해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냉장고에 보관 중인 양파 반쪽이 보인다. 양파 썰다가 눈물을 흘리기 싫어 순식간에 잘라 그릇에 옮겨 담는다. 냉장고 있던 파프리카, 자투리 당근 등 보이는 야채 떨거지들을 모두 쓸어 담았다.

  이제 면을 삶을 차례가 왔다. 아내가 속이 좋지 않은 관계로 3인분만 만들면 되는데 어디서 듣기로 1인분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삶으면 된다기에 스파게티 면을 3번 손으로 계량하여 꺼냈다. 약간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50원짜리 동전만큼 더 넣었다.

물이 끓는 동안 마저 소스를 준비했다.

  소스라고 해야 거창한 소스도 아니고 내가 만들 엄두는 나지 않고 시장에서 사온 파스타 소스를 그냥 섞어서 식탁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팬에 소스를 넣고 보니 비주얼이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거 아이들이 먹겠나 싶다. 원래 토마토 파스타는 조금 더 빨간색이었던 거 같았다. 빨간 색소라도 더 넣어야 맛있어 보이려나.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나서 한참을 휘젓는데 한 가지를 놓쳤다. 8분쯤 삶아야 하는데 언제쯤 넣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면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 길이 없어 계속 한 두 가닥씩 먹다 보니 이제는 얼마나 더 끓여야 할지 모르겠다.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난 큰 아이가 부족했는지 간식 서랍을 뒤적거린다. 내 눈치를 보며 시리얼을 한 개씩 꺼내 먹는다. 배고프면 더 먹으라며 했더니 둘째도 한 마디 외친다. "오빠, 나도 그릇" 두 아이는 언제 저녁을 먹었냐는 사람처럼 시리얼 한 그릇을 비워낸다.

  아이들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이유를 알았다. 바로 허기와 감질맛이었다. 마치 프랑스 요리가 한참을 기다려야 조금만 나오듯 아빠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한참의 허기를 참아야 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요리도 정확히 한 그릇이다. 한 그릇을 담고 나면 더 담고 싶어도 담을 것이 없다. 그러니 감질맛이 난다. 그래 나의 요리는 그 두 가지 때문에 아이가 맛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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