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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Oct 27. 2019

우리 집에 없는 3 단어

주말 삼각 김밥

  주말 아침 밥통을 열었다. 3인분이라 하기에는 조금 많고 4인분이라기에는 약간 적었다. 늦은 아침이니 주먹밥을 만들 요량으로 양푼에 밥을 담았다.

  시금치를 잘 안 드시니 이렇게 가위로 쏙쏙 잘라 절대 골라내지 못하게 비비고 있었다. 옆에 지나가던 딸 한 마디를 날린다.

“아빠, 주말에 삼각 김밥 해준다면서요!”

  우리 아이들 공부는 잘도 잊으면서 먹는 일 관련된 건 절대 잊어먹는 법이 없다. 그래, 그랬지.


  얼마 전 바쁜 아침 딸이 삼각 김밥 만들어달라기에 지나가는 말로 “주말에 해줄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빠는 늘 음식 부채를 달고 사는구나. 매주 해줘야 할 음식이 쌓여있으니.

  삼각 김밥 김을 어느새 들고 와 내게 내미는 녀석.

세상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삼각 김밥 하나 못 만들겠나 싶어 종목을 전환했다.

  

  일단 삼각 김밥용 김을 깔고 틀에 맞춰 꾹꾹 눌러 담는다. 드문드문 시금치가 보이지만 절대 빠지지 않게 몇 개 더 올려놓는다.

  틀에서 벗어난 삼각 모양의 밥, 이제 잘 포장해 줄 일만 남았다.

  잘 말아서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그래도 제법 그럴듯하다. ‘소풍 가서 먹을만하겠는데?’ 그런 생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이들이 하나씩 가져간다.

  열심히 포장을 벗겨 삼각 김밥을 만들어 먹는다. ‘바로 먹을 거면 뭐 하러 포장했니?’라는 말이 나오려 지만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아이들이 먹는 동안 두 개를 더 만들었다.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야?” 하며 삼각 김밥 재료를 정리했다.

“아빠, 우리 집에 ‘너무 많아’는 없어”라며 딸은 눈을 흘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없는 단어 3개가 떠올랐다.

많아

배불러

못 먹겠어


  내가 음식을 할 때마다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지만 늘 남는 게 없다.

  ‘배고프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남매, 정작 ‘배부르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식사를 하고 나면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냉장고도 한 번 열어보았다가 간식 서랍도 무심한 척 열어본다.

  아이들 그릇에 너무 많이 떠 준 느낌이 들지만 아이들이 ‘못 먹겠어’라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는 적이 없다. 본인들이 싫어하는 재료를 제외하고는 늘 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다.


  딸이 삼각 김밥과 함께 입가심으로 우유 한 잔을 마시더니 갑자기 체중계로 뛰어간다. 체중을 재고 나더니 열심히 체중계를 두드려 자기 몸무게의 흔적을 없애고 있다.

“다이어트해야겠다. 살쪘어!”

마음속에서는 진심이 요동친다.

‘그래 조금 빼도 괜찮겠다.’

하지만 그랬다간 딸이 호랑이 눈으로 쳐다보며 인정머리 없는 아빠로 찍힐 테니 에둘러 말한다.

“밥 먹고 운동하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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