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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11. 2020

인생의 속도

빠름이 정답은 아니다.

  20대의 나는 속도에 미친 사람이었다. 시속 100km 제한 속도인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를 앞서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래서 때로는 과속으로 차를 몰아 속도 제한 위반 범칙금을 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차를 타는 순간 나는 마치 자동차 경주에 돌입하듯 목적지까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누군가가 나를 앞서 나가면 참지 못하였고 그 차를 앞서기 위해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나는 속도에 매몰되어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나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가면서 내 속도에 제한이 걸렸다. 어머니는 내가 최대 속도 80km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2차선도 아닌 화물차가 다닌 4차선까지 내려가서 걸어가는 것인지 차로 가는 것인지 모를 만큼 느린 속도를 참아가며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90km라도 되면 어머니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나를 제지하셨다.

  평소보다 1시간 이상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 차이는 30분도 나지 않았다. 운전하는 동안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을 만큼 평소보다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일을 하거나 살다 보면 자꾸만 주위를 보게 된다. 주위 사람들은 빨리 가는데 나만 홀로 뒤처진 느낌이 든다. 남들은 나보다 2배쯤 빨리 달리는데 나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는 건 아닌지 그런 느낌 말이다. Trade off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절충쯤 될 것이다.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가고, 다른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편이 내려가는 것이라 보면 된다. 앞의 사례에서 본다면 인생이라는 저울에서 속도를 얻는 순간 주변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사라진다. 반대로 속도를 내려놓는 순간 주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전적으로 얻기만 하고 전적으로 잃기만 하는 거래는 없다. 다만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무언가를 얻는다면 무언가를 잃는다.  남들을 따라 내가 속도를 추구하는 순간 내가 잃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자. 내가 잃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시간이나 건강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도를 얻으려는 대신 나는 무엇을 내줄 수 있는지 차분히 앉아 생각해 봐야겠다. 현재라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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