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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Nov 04. 2020

낯선 세 남자

프로그래머, 주방장, 세금쟁이

  평소 같으면 만나기 힘든 세 남자가 모였다. 외국계 은행 프로그래머, 한식당 주방장, 그리고 세금쟁이.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모인 계기는 하나였다. 같은 반 학부모라는 사실이었다. 나이 차이도 10살 이상에 일하는 분야도 다른 남자 셋이 모여서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겠나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AI도 거짓말을 한다.

  시작은 프로그래머 아빠였다. 최근 은행에서 AI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 안에서 코딩이나 보완 작업을 하는데 이제 AI가 딥러닝을 통해서 은행 창구의 텔러들이 하는 수준의 일은 모두 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AI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AI가 거짓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에 대한 답변이 더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당신이 듣고 싶은 답이잖아요."

  AI가 점점 발전하겠지만 나중에 지식이 발전하다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과거의 소설 속에서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계에도 딸랑이는 있다.

  나는 외국계 회사면 모두 다 객관적인 실력으로 다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화상 회의를 많이 하게 되는데 회식도 화상으로 하자고 제의를 했단다. 그래서 각자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화상 회의 모드를 켜고 회식을 했단다. 모든 사람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집중도 되지 않기에 결국 상급자가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회식인지 업무인지 모르는 자리를 끝내고 나니 상급 관리자들이 너무 좋았다며 다음에 또 마련하자고 했단다. 밑에 사람들이 반발하면 좋겠지만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자리를 마련해줘서 좋았다는 이야기에 다른 자리가 또 마련되었단다.

  외국계라고 해서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곳이 아니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전달할 수 없는 1%

  그다음은 주방장 아빠였다. 한식당 주방장을 하며 보조 주방장들에게 요리에 대한 레시피와 감각을 전달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보조 주방장들이 레시피를 배워서 다른 식당을 차리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런데 주방장 아빠의 대답은 생각과는 달랐다. 보조 주방장들에게 때로는 음식양이 조절이 안돼서 적게 넣거나 많이 넣으라고 하면 너무 적거나 너무 많거나 양 조절을 잘 못한다고 했다. 똑같은 양념과 똑같은 레시피에 같은 시간을 조리했지만 맛이 너무 다르다고 했다. 보조 주방장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의 레시피를 알려줘도 못 따라 하는데 과연 그들이 나가서 자기 사업을 차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는데 본인도 그 부분을 알려주지 못해서 오히려 답답하다고 하셨다.


  무능한 사장 밑의 유능한 직원

  자영업을 하시는 주방장 아빠는 휴일에 쉴 수 있는 근로자가 부럽다고 하시고, 회사에서 오래 다닌 프로그래머 아빠는 자기 사업을 하는 자영업이 부럽다고 하셨다. 결국 서로를 부러워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자식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같은 결론에는 도달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달려온 곳은 무능한 사장 밑에서 유능한 직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고. 최소한 우리 자식들에게 똑같은 길을 가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사실 말이다. 직원이 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이 행복해하는 자리에서 일하기를 바랄 뿐 그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세 가지 중의 한 가지를 바꾸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는 곳, 만나는 사람, 사용하는 시간. 이렇게 3가지다. 의식하지 않다 보면 늘 비슷한 사람과 만나게 된다. 회사에서도 주변에서도 늘 나와 생각이 닮은 사람을 만난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최근에 만난 다섯 사람의 평균을 내 보라는 김창옥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처럼 이렇게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다양한 생각과 함께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구나 느끼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의식적으로라도 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함을 다시금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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