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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an 18. 2021

40년이 지나서 알게 되는 것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근후, 갤리온)

  질병과 함께 사는 아흔의 노인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이근후 교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에서 "제3장 마흔 살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만 간단히 추려 보았다. 나는 저자가 재미있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재미있게 살려고 이렇게 노력했다는 말이 더 맞을 만큼 저자의 다양한 시도가 기억에 남았다.


1. 내뜻대로 산다는 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태어난 환경이나 부모를 100% 축복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태어남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어쩌면 우린 신이 아닌 이상 우리의 뜻대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기 삶에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 장애물을 넘을 때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된다. 장애물은 자신이 그것을 진짜 원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자신을 모르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게 된다.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면 타인과 끊임없는 경쟁뿐이다.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10대에는 모두 다 학생이었지만 40대가 되어서 보니 각자 보유한 자산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그 사이에서 나만 뒤처진 건 아닌지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옆집 아저씨는 돈도 많이 벌어오고 자상하고 키도 크고 잘생겨 보인다. 아랫집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보인다. 남이라는 잣대를 자꾸만 가져오면 인생은 점점 더 불행한 길로 접어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바꿀 수 있는 일, 나만의 잣대로 내 인생을 판단하는 일, 이런 것에 집중할 때 인생은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진다.  


3. 내 몫의 일을 해냈다면 나이 든 뒤에 돌아보는 삶은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마치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은 뒤 마지막에 이해되듯이.


  가끔 살다 보면 과거에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1비트코인을 10만 원에 샀더라면, 테슬라를 10달러에 샀더라면,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샀더라면, 삼성전자를 30만 원에 샀을 때 팔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숱한 가정을 하며 인생을 산다.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 자신이 열심히 달려왔다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다. 지금의 나는 연륜도 있고 지혜도 있었지만 과거의 나는 지금 나만큼의 역량은 갖고 있지 않았다. 부족한 역량으로 이만큼까지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된다.

  살아보니 고생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고생을 했다고 성과가 좋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고생을 하지 않았다고 성과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생사 모든 것이 운에 좌우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도 하고 고생도 했지만 결과가 나쁘다고 노력까지 비하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4. 억제하지 못한 한순간의 분노가 삶을 비극으로 끝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뜻은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자꾸만 아이가 되어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만큼 참을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꾸만 고집을 부리고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분노가 커지고 심한 경우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화는 타인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감정 때문에 많이 일어난다. 자신의 마음 필터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고요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분노를 조금 더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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