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과거에 읽어본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은 이 책 다음에 나온 [삶의 의미를 찾아서]였다. 다른 책들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추천도서로 많이 뽑았기에 내용이 궁금했다. 아마도 그만큼 다른 작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내용보다는 내가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해보다.
[수용소]
저자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다. 히틀러에 의해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들 속에 저자 프랭클 박사도 함께 있었다. 수용소라는 공간은 어쩌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중 가장 최악의 공간일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철저히 짓밟히는 인간의 권리, 그렇게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원시 세계 같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자신이 아끼던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애써 기록했던 원고마저 잃어버리고 힘들어했을 프랭클 박사는 어떻게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을까?
[돼지와 성자]
수용소라는 공간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예의를 차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돼지의 모습을 따른다. 즉, 본능에 따르며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성자의 모습을 띠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특히나 수용소의 소장은 자신의 급여로 수용자들의 약을 직접 사서 주기도 한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소장은 수용소가 해체되고 나서 살아남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현실]
삶이란 현실이 가끔은 수용소만큼이나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닐까? 올가미처럼 무언가에 갇혀서 더 나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때 인간은 자기의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만큼 괴로운 상황이 또 있을까?
책 말미에 있는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적는다. 니체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왜'(why)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보다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잘나지 않았어도 대단하지 않아도 숨 쉬고 있는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살아야 하는 의미는 있다. 자신의 가치를 절대 폄훼하지 말자. 자신의 가치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