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29. 2023

089_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

늘 남의 떡은 커 보인다

  어린 시절 나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살던 집 옆집에 친구가 살았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제복을 입고 계신 그 친구 아버지를 보며 '멋있다 나도 나중에 경찰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무렵이 중학교 때였다.

  그렇게 막연히 경찰이란 직업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을 때 고등학교로 경찰대 선배들이 찾아왔다. 경찰대에 간 고등학교 선배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신없이 공부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하나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그 덕분에 중위권에 머물던 성적은 점점 오르기 시작해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상위권까지 가게 되었다.


  경찰대 시험은 1,2,3차가 있는데 1차는 국영수 2차는 체력검정 3차는 수능이었다. 1차 국영수 시험은 고등학교 3학년 5월에 치렀는데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2차였다. 운동을 많이 안 해서 달리기 기준을 통과할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시력도 미달이라서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저녁 자율학습 휴식시간 20분마다 매번 운동장을 달렸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미래의 합격한 내 모습을 생각하며 계속 달렸다. 덕분에 2차 시험장에서 달리기 검정은 통과를 했다.


  하지만 문제의 시력검정. 시력이란 건 연습한다고 좋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쉼 없이 책을 봐서 그다지 좋아진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시력이 더 나빠졌다는 느낌이었다. 거의 눈을 찌그러뜨려 겨우겨우 합격하여 우여곡절 끝에 2차를 통과했다.


  마지막 3차 수능. 그해 수능은 다른 때보다 많이 쉬웠다. 그래서 만점자가 수십 명이 나왔다고 했었다. 남들 40점 오를 때 나는 20점 정도밖에 오르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다. 결국 3차 수능에서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2년간 대학만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마지막에서 이렇게 무너지다니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의욕도 없었다. 재수를 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지만 어머니께서 '너의 적성에 맞지 않는 경찰보다는 세무가 나을 것이다'라는 말에 세무대를 가게 되었고 20년이 넘게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2013년 여름 뜻하지 않게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2인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찰이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동안 경찰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 물어보았더니 쌓였던 질문들이 속시원히 해결되었다.

  그런데 막상 현직 경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나니 과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경찰의 현실이 많이 달랐다. 살인사건이나 변사체가 발견되면 전혀 음영처리 되지 않은 시체를 봐야 하고 일정 직급에 올라가면 계급정년이라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범죄자와 다투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등 그냥 막연히 괜찮아보였던 어렴풋했던 나의 이상과는 많이 달랐다. 숫자를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어쩌면 3차에서 떨어졌던 것이 나의 인생에는 더 맞는 길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직장이든 애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 나의 일은 숫자를 다루는 일이기에 일 자체로는 재미있지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참아내야 하는 힘든 점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이라면 그 직업에 대한 장점, 단점 그리고 직접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보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직업을 찾는 게 더 좋은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086_당신 눈을 보면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