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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an 30. 2024

#30 괘씸죄

이 사람이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건가?

  세무조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무조사관들이 나만 조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세무조사관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세금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본 저의 시야는 조금 다릅니다.


  어떤 조사 부서든 사실 단 한 건만 조사를 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심도 있게 조사를 하는 특수 부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조사팀이 보통 2,3건 많게는 10건까지 동시에 진행하게 됩니다.


  조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조사팀이 나만 잡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조사의 경중에 따라서 조사 비중이 다르고 조사 시점마다 하는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조사 한 건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는 없습니다.


  세무조사는 조사관들에게 그저 일입니다.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보고도 많고 보는 눈도 아주 많지요. 그러다 보니 각 건별로 진행현황을 무수하게 보고해야 합니다. 세금을 많이 추징한다고 엄청난 성과급이 나오지 않고요.


  간혹 어떤 납세자분들은 조사관이 자료를 요청하더라도 일부러 튕기며 주지 않는 경우가 있더군요. 사정이 어렵거나 자료를 분실해서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정도는 세무조사관들도 현장에 나가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뻔히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료 제출을 기피하는 분들이 있지요. 물론 그런 사실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결국 세무조사라는 것은 어떤 문제점을 찾아서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인데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해서 조사가 끝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죠.

  자료제출 거부는 세법에 정한 조사 기간을 늘릴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합니다. 세무조사관이 조사 연장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밖에서는 쉽게 연장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납세자 권익보호가 강화돼서 써야 할 서류도 많고 검토사항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때로는 연장을 신청한 기간이 축소되거나 거부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조사 기간을 늘려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 조사가 후순위로 밀리고 시간이 더 늘어지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자료 제출을 회피하여 세무조사관들의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무조사관에게 무조건 고분고분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납세자 보호 담당관에게 이의제기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도 있습니다.


  세무조사관도 분명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디 일부러 자료제출을 기피하여 괘씸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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