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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r 06. 2024

#66_피아노에서 배우는 지혜

2012년의 일기에서

https://brunch.co.kr/@hermite236/1755

  일기장에서 과거를 꺼내 봅니다.


2012.8.14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지적사항이 많았지요. 30대가 되어 처음 배우는데 손도 많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쳐라.]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하다 보면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건반을 치는 일 역시 매우 낯선 일이었습니다. 제가 급한 성격이라 자꾸만 대충대충 누르고 다음 음으로 넘어가려 했지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쩌면 소심하게 치는 걸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건반을 끝까지 누르라는 조언을 해주셨죠.


[무의식의 단계까지는 의식적으로]

  일이 익숙해지면 무의식의 단계에 오르게 됩니다. 운전도 처음에는 여기저기 모든 것을 신경 쓰다가 나중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것처럼 처음 피아노의 시작은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특히나 박자감각이 떨어져서 그런지 템포가 안 맞는다고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하시더군요. 나만의 박자를 찾아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박자를 세면서 연습했습니다.

2012.8.21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먹으니 단 10분 만에 점심을 먹었죠.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은 45분이 남았습니다. 피아노 학원까지는 대략 10여분 정도, 무더위에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무조건 가자’라는 생각으로 학원에 갔습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뒤로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이미 연습실 방은 모두 차 있고 복도에 있는 피아노에만 자리가 있더군요.  

  피아노 학원을 시작한 지 아직 한 달이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악보도 모르겠고, 연주도 잘 안되고, 자세도 불편하고 모든 것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학원까지 와야 하는 귀찮음도 있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힘들더라도 2달만 버텨보라고 하시더군요.

  처음 습관화가 가장 힘든 것은 맞습니다. 익숙함의 고개를 넘기까지 괴로움의 시간을 견뎌야 편안함의 시간이 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유난히 급한 성격에 자꾸만 실수를 했습니다. 천천히 중간에 실수했더라도 끝까지 가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냈습니다.

2012.12.4

[반박자, 자신감, 반복]

  피아노 학원에 다닌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조금은 피아노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는데 저는 떴다 떴다 비행기를 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아저씨는 유키 구라모토의 곡을 멋들어지게 치고 있더군요. 과연 나는 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내 실력은 고작 이 정도인데 달성은 가능할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연습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박자였습니다. 약간의 엇박이었는데 손에 익지 않더군요.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계속 연습한 끝에 반박자 곡을 익힐 수 있더군요.  


  그렇게 치열하게 피아노를 배운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한동안 피아노를 놓고 있어서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보고 싶지만 언제쯤 가능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우선순위에서 글이나 그림보다는 더 뒤에 있기에 자유시간이 더 많아져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대략 1년의 기간 동안 쳤던 피아노가 인생의 몇 가지 교훈을 남겼고 저에게도 새로운 공부의 기회였다고 생각됩니다. 향후 10년 안에 피아노를 시작해 20년 뒤에 피아노 독주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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