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공무원
세종시 출장 일정으로 인해 SRT 기차를 타고 오송역을 향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서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빌딩 숲 대신 넓은 들판이, 복잡한 도로망 대신 정돈된 신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잠깐의 탑승 후 오송역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린다.
그 순간, 묘한 장면이 펼쳐진다. 모두들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 똑같은 정장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의 사람들이 일어난다. 남성들은 흰색이나 하늘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또는 남색 바지, 여성들은 절제된 색감의 블라우스와 정장 재킷. 거기에 헤어스타일마저 비슷하다. 남성들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나 짧게 자른 스포츠형 머리, 여성들은 어깨 위로 단정하게 묶은 머리나 단발. 멀리서 보더라도 누가 공무원인지 일반 사람인지 차이가 보인다.
이들은 굳이 명함을 내밀지 않아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의 직업을 '입고' 있다. 입고 있는 와이셔츠와 분위기만으로도 공무원임을 짐작하게 한다. 마치 제복을 입은 것처럼, 아니 어쩌면 제복보다 더 강력하게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제복은 벗으면 그만이지만, 이 '직업 복장'은 단순히 옷차림을 넘어서 걸음걸이, 표정, 심지어 대화하는 방식까지 규정하는 듯하다.
플랫폼을 걸어 나가면서 생각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직업을 입기 시작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언제부터 직업이 우리의 외모를 결정하기 시작했을까?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외모로 타인의 직업을 판단한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후드 티셔츠와 청바지, 금융권 직원들의 진한 색상의 정장과 구두, 광고·마케팅 업계 사람들의 트렌디한 캐주얼 룩. 그리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공무원들의 절제되고 보수적인 복장. 마치 각자의 직업군이 하나의 유니폼을 공유하는 것 같다.
어쩌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단지 하는 일의 종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정적이고, 믿음직하고, 보수적이고, 절제된 이미지. 그것이 그들이 입어야 하는 '공무원'이라는 옷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질문하게 된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직업이 우리를 만들어버린 것일까? 직업이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송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나의 직업을 입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퇴근 후에도 그 옷을 벗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직업을 입는 시대, 우리는 과연 옷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