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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으로 바라 본 선교

예수님은 과연 좋아하셨을까?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아침 출근길, 지하철 출입구에서 항상 그들을 마주합니다. 손에는 전단지를, 입에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담은 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위협적으로 귓가에 맴돕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천국에 갑니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불자인 제 마음속에는 묘한 감정이 일렁입니다.


어릴 적, 호기심에 읽었던 성경 속의 예수님은 많이 달랐습니다. 그분은 거리에서 소리치며 사람들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조용히 빵을 나누고, 아픈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지요. 그분의 말씀은 강압적이지도 않았고, 두려움을 심어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의 이름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그런 따뜻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까요?


지하철을 타러 가며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봅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긴걸까? 아니면 마케팅 전략에 따른 세일즈맨의 열정만이 있을까?

'이익 강조형'과 '불이익 강조형'으로 나뉜 그들의 메시지는 마치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텔레마케터의 멘트처럼 들렸습니다. 천국이라는 상품의 혜택을 강조하거나, 지옥이라는 패널티를 부각시키는 방식처럼 말이죠.


과거의 저는 불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묵상에 잠겼습니다. 부처님은 누구에게도 그를 따르라 강요하지 않으셨지요. 대신 모든 이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기를 바라셨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외부의 압력이 아닌, 내면의 깨달음에서 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가르침 속에서 자란 제게, 주님은 나의 목자라고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더더욱 이질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끔은 그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과연 그 이야기를 듣고 전도에 성공할 확률이 1/100도 되지 않을텐데, 그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어 고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해가 무덥게 내리쬐는 여름 날에도, 차가운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내면은 어떤 풍경일까요? 혹시 그것은 실제 믿음보다는, 선교라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일종의 자기만족감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안도감, 그리고 '나는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있다'는 우월감이 그들의 영혼을 저 자리로 이끄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자로서, 때로는 다른 종교의 경전을 읽는 것이 내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속 예수님의 말씀에도 깊은 지혜와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지하철역 앞에서, 거리에서 전해지는 방식을 볼 때면, 그 본질이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성경 속 예수님이라면, 오늘날의 그런 선교 방식을 보고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랑으로 대하라"고 가르치신 그분께서, 위협과 두려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를 과연 축복하셨을까요?


지하철 창가에 서서, 저는 오늘도 그 질문을 되새깁니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판매되어야 할 상품인가, 아니면 조용히 내면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인가? 저와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며, 저는 진정으로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그들의 진심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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