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혼란과 왜곡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제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그 기억은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도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그 당혹감은 마치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린 느낌이다.
왜 우리의 기억은 이토록 변덕스러울까? 오늘 아침,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집 안을 헤매던 나는 문득 그 질문 앞에 멈춰 섰다.
우리의 뇌는 중요도에 따라 기억을 선별한다. 얼굴은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정보이기에 특화된 뇌 영역에 저장되지만, 이름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으로 다른 경로를 통해 저장된다. 두 정보가 서로 다른 뇌 영역에 저장되기에, 한쪽만 불러올 때가 있는 것이다. 마치 서로 다른 방에 놓인 책을 동시에 꺼내려는 것처럼.
열쇠나 지갑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상의 반복된 행동은,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루어져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의 열쇠 위치가 어제, 그제와 다르지 않다면, 그 기억들은 서로 뒤섞여 흐릿해진다. 마치 비슷한 풍경의 사진들이 한데 겹쳐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찾는 것과 같다.
어떤 경험은 왜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정이 깃들지 않은 기억은 바람에 실려 떠나가는 민들레 씨앗과도 같다. 반면, 강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은 끈질기게 남아 우리를 괴롭히거나 위로한다. 첫사랑의 설렘, 이별의 아픔, 성취의 기쁨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유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 뇌의 생존 메커니즘이다. 위험했던 순간을 잊지 않고 반복함으로써 미래의 위험을 피하도록 경고하는 것. 마치 어린 시절 뜨거운 불에 데인 손가락의 기억이 평생 우리를 불 가까이 가지 않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때로 이 보호 장치는 과도하게 작동해 트라우마가 된다. 지나간 고통이 현재를 잠식할 때, 그것은 이미 보호가 아닌 새로운 상처가 된다.
기억의 혼란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의식적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열쇠를 놓을 때, 잠시 멈추어 그 행동을 인식하라.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 그 얼굴과 이름을 의식적으로 연결해 보라. 마치 두 손가락으로 실을 묶듯이.
또한 기억은 이야기 속에서 더 견고해진다. 경험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거나, 일기에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그 기억은 더 오래 남게 된다. 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노트에 기록하며, 그것이 내 기억의 정원을 가꾸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완벽할 수 없다. 그것은 정확한 기록 장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기억의 미로를 걷다 보면,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삶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아침 잃어버렸던 자동차 열쇠의 행방이 문득 떠오른다. 어제저녁, 지친 몸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무심코 놓았던 그 순간이. 기억의 실마리를 더듬어 찾는 이 여정이, 어쩌면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은 은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