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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내리는 사람

전문가로 거듭나는 길

세무사업만 30년 이상 하신 세무사님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에 사무실로 수습 세무사가 들어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일반적인 수습 세무사가 아니라 그분의 선배가 부탁해서 들어온 자녀 세무사였다고 합니다. 30년 세월의 경험이 깃든 고참 세무사로부터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수습 세무사가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랐기에 보냈겠지요. 아는 선배의 자녀라는 이유로 더 신경 쓰이는 마음이 컸기에 쓴소리를 많이 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모로 가르칠 게 많다고 하시면서 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수습 세무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그 한 마디에 담긴 불확실함과 주저함이 답답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라는 단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세무사의 조언 한 마디에 누군가의 재산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무거운 책임 앞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마치 단단한 벽을 세우지 못한 채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지요.


진정한 전문가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회색지대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맞습니다"와 "틀립니다"라는 명확한 선언은 수년간의 공부와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성찰이 만들어낸 자신감의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길은 단순히 확신에 찬 답변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소통으로 이어가는 능력, 그것이 두 번째 열쇠입니다. 자신이 이해한 복잡한 세법의 미로를 상대방의 지도에 맞게 그려주는 일. 그것은 마치 두 개의 다른 언어 사이에서 통역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옷은 어떻게 사나요?"라는 물음에 "엄마가 사줍니다"라고 수습 세무사가 답했다고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자신의 결정과 책임을 회피하는 마음이 훗날 전문가로서의 책임감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옷 한 벌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산업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경제적 판단을 내리는 연습을 합니다. 삶의 작은 영역에서조차 타인에게 결정을 맡기는 습관은, 전문가의 길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참 세무사님은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스스로 옷을 사는 연습을 하라고 추천했다고 합니다.


서류 위에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세무사 혼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을 위해서는 회계직원이 필요하며, 그 회계 직원들과의 협업,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중재,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결과물의 완성도까지, 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각기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로 엮어내는 것과 같이 여러 사람들을 잘 이끌어야 하죠.


얼마전에 고참 세무사님 사무실에서 두 직원 사이에 작은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무조사 대비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견 차이였지요.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서는 일, 그것은 단순히 누구의 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한 조화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길은 지식의 깊이만큼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는 능력 또한 중요합니다.


전문가는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끊임없는 공부와, 자신만의 관점을 갖기 위한 노력, 소통의 깊이,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책임감에서 비롯되겠지요.


언젠가 그도 누군가에게 명확한 답을 주는 진정한 전문가가 되어 있겠지요. 그날까지의 여정이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이 성장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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