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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보다 능력

골프 스코어가 내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책상 위에 검토할 서류 더미가 한가득이다. 세금 신고서와 재무제표 사이로 어제 골프장에서 받은 명함이 보인다. 유리잔에 담긴 차가 식어가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서 찾는 건 골프 프로가 아니다. 내가 골프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세금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부자와 전문가를 연결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투명한 숫자의 세계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일, 그것이 내 본업이자 정체성이다. 세무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내 손끝에 새겨져 있다.


지난주 금요일, 중요한 고객과의 골프 라운딩이 있었다. 푸른 잔디 위에서 자연을 느끼는 순간은 참 좋다. 공이 그린 위에 부드럽게 안착할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동반자들의 감탄 속에서 나는 잠시 세무 전문가가 아닌 골퍼로 존재했다. 물론 골프를 잘 치고 재미있다면 좋겠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그날의 기억을 되새긴다. 골프 클럽을 잡았던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골프 스코어가 내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까?'


밤늦게까지 세금 신고서를 검토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고객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세법과 규정 사이에서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던 순간들. 그 치열한 노력이 내 진짜 모습이다. 자신의 본업을 게을리하고 그저 골프만 잘 친다고 인맥이 저절로 늘지는 않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달, 골프 실력은 뛰어나지만 세무 상담에서 실수를 연발했던 다른 고객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다. "제 대리인은 골프는 정말 잘 치시더군요, 하지만 제 세금 문제는 더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해서 선생님께 상담을 의뢰해요." 그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오래된 풍경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흐릿하게 그려진 것처럼, 본업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면 아무리 골프를 잘 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언제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붉게 물든 하늘이 내게 속삭인다. 내일도 나는 세무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골프 클럽을 잡는 손은 먼저 펜과 계산기를 정확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내 손에 새겨진 숙명이자 긍지다.


오늘 저녁, 골프 모임 단톡방에 알림이 울렸다. 다음 달 주말 라운딩 일정을 조율하는 메시지들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의 약속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골프는 그저 흥미의 도구일 뿐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고 내게 말한다. 마치 오래된 진리를 되새기듯.


어느덧 책상 위 창문으로 저녁 별빛이 스며든다. 고요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내일의 상담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오히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 골프장의 환호성 보다 이 고요함 속에서 내 진정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밤이 깊어간다. 내일의 고객 미팅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골프장에서의 인맥은 내가 본업에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린 위의 스윙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와 규정 사이에서 길을 찾아내는 전문가로서의 능력이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골프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골프 클럽이 아닌 만년필을 든 손. 그 손끝에서 비로소 내 진짜 존재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찾는 것은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치 어둠 속에서 별을 찾듯, 우리는 결국 진실된 빛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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